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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면 대장리 석불(蘇伊面 大長里 石佛)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소이면 대장리 석불(蘇伊面 大長里 石佛)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0. 3. 1. 17:48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 대장초등학교 교정에 위치한 석불 입상.
대장리 석불은 화강암으로 조성된 불상으로 머리는 결실되었으나 광배(光背)를 갖추고 있는 석불입상이다.

대략적으로 보아 오른손은 일체 중생의 여러 공포를 없애고 안심을 얻게 하는 부처의 가장 중요한 인상(印相)으로서 시무외인이며 왼손은 부처가 중생에게 사랑을 베풀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게 해준다는 덕을 표시하는 인상()으로, 시여인(), 시원인(), 여인() 등으로도 불린다.
손의 모습은 왼팔을 길게 아래로 늘어뜨리고 손가락을 펴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때 마지막 두 손가락을 약간 구부린 불상이 많다.

오른손을 어깨높이로 올리고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는 시무외인과 반대되는 형상인데, 대개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왼손은 여원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수인은 선정인이나
항마촉지인과는 달리 석가모니가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하던 인상이었는지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장소에서 어떤 의미로 취하는 것인지도 가려내기 어렵다. 다만 한국 삼국시대의 불상에서는 시무외인과 함께 불상의 종류에 관계없이 모두 취하고 있는 수인이며, 그래서 이 두 수인을 통인()이라고도 한다.

대장리 석불은 100㎝ 크기의 석불로서 정확한 연대를 측정할수있는 근거가 없다.들리는 소문으론 석불을 소유하고 있던 학부모가 학교에 기증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정확한 것은 알수가 없다.(음성디지털문화대전)

 

 

제 블로그에서 언급했듯이 후미리사지에서 반출되여 대장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눈을 맞춘 듯 합니다

제 고향을 찾아주던지 아니면 박물관등으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을 주민(노명식, 67세)의 전언에 의하면 석불은 과수원(후미리 1614-10번지) 한가운데 서 있었으며, 발부분은 묻혀 있었고, 지상에노출된 전체 높이는 1.5m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불상이 큰 돌에 붙어있었다고 표현된 것으로 보아 바위에 양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불은 1970년대 후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을 무렵 새마을 지도자들이 천렵을 왔다가 경운기에 싣고 갔다고 하며 주민들이 찾으려했으나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한국의사지에서 발췌]

 

 

한국의 사지의 글에서 새마을지도자들이 천렵을 왔다가 후미리사지에서 불상을 싣고갔다는 대목과 불상이 큰돌에 붙어있다는 대목에서 문득 지금 대장초등학교에 자리하고 있는 석불이 머리를 스친다.

새마을 지도자들이 천렵을 왔으면 그리 먼곳에서는 오지 않았고 경운기등을 몰고 왔다면 지근거리임이 분명할터 혹시나 하는 내생각이 후미리석탑과 대장초등학교 석불상을 한번 동일선상에 놓아본다.

 

음성디지털문화대전에서도 석불을 지닌 학부모가 학교에 기증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후미리사지에서 반출된 석불은 당시 새마을지도자중의 한사람이 집등에 지니고 있다가

대장초등학교에 기증하였다면 이야기가 아구가 딱 맞는다.

대장초교의 석불의 고향은 후미리사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