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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면 덕촌리 충주지씨열녀문(玉山面 德村里 忠州池氏烈女門) 본문
옥산면 덕촌리에 있는 이 열녀각은 1854년(철종 5)에 정검(鄭儉)의 부인 충주 지씨(忠州池氏)의 정렬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 지금의 열녀각은 1927년에 중수하고198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는 열녀문 편액을 걸었다. 또한 1931년에 후손인 정두현(鄭斗絃)이 짓고 쓴 중수기(重修記)가 걸려 있다.정검의 충신문도 겸하고 있다.
정검(鄭儉)은 하동인으로 임진왜란때 왜군이 청주로 침입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의분하여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에 대항하였다.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왜군의 기세를 꺽지 못하고 왜병과 싸우다 순절하였다.
또한 정검의 처인 충주지씨는 왜병에게 발각되여 왜병이 충주지씨의 미색에 취해 겁탈하려하자 충주지씨 그왜병의 무례를 꾸짖고 순절하였다.그때의 충주지씨의 나이는 28세였다.
군자감 정검내외의 충렬이 나중에 나라에 알려져 철종때 정려되였다.그리고 그 사적이 삼강편에 기재되기도 하였다.하동인 정검과 그의 부인인 충주지씨 내외의 무덤은 마을 뒷산에 안장되였다.
열부각안에 편액에는 열부증통훈대부군자감정정검처숙인충주지씨지문(烈婦贈通訓大夫軍資監正鄭儉妻淑人忠州池氏之門)이라고 적혀있으며 또 다른편으로는 절의하동정씨지문(節義河東鄭氏之門)이라는 편액도 걸려있다
충주지씨는 조선 중기의 열녀이다.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아버지는 장령(掌令)을 지낸 지전(池筌)이고, 남편은 통정대부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된 충의위(忠義衛) 정검(鄭儉)이다. 부인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효성스러운 성품을 지녔으며, 하동정씨(河東鄭氏) 정검에게 시집을 가서는 지극한 정성으로 시부모님을 섬겼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적을 피해 딸과 함께 마을 뒤 응봉산(鷹峯山)으로 피신하였는데 그만 왜적에게 잡히었다. 왜적이 겁탈하려고 하자 부인은 정조를 지키려고 화를 내며 적을 꾸짖다가 결국 딸과 함께 왜적의 칼에 죽임을 당하였다.
이러한 절의를 지킨 지씨부인에게 정려가 내려졌고, 『삼강록(三綱錄)』에 그녀의 행적이 실려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옥산중학교 뒷산인 모래실산에 남편과 함께 합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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