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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면 덕촌리 하동정씨묘역(玉山面 德村里 河東鄭氏墓域) 본문
옥산면 덕촌리 마을 뒤산에 있는 하동정씨의 묘역입니다. 문절영당에 들렸다가 발길을 했습니다. 충의위를 지낸 정승길의 묘지등이 후손들에 의하여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충의위는 1418년(세종 즉위년) 개국(開國)·정사(定社)·좌명(佐命)의 3공신 자손들이 주로 소속되도록 만들어진 특수층에 대한 일종의 우대 기관이었다.
나중에는 공신 자손의 적자(嫡子)·적손(嫡孫)만이 아니라 중자(衆子)·중손(衆孫)도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뒤에 범위가 더욱 넓어져 공신 자손으로 적자손(嫡子孫)이 없을 경우에는 첩자손(妾子孫)이라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게 하였다.
충의위는 위의 공신 자손들이 18세가 되면 아무 시취(試取)의 관문도 거치지 않고 입속되어 군사적 실력과는 거의 관련 없이 입직근무(入直勤務)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자원(自願)하면 60세까지는 계속 입번(入番)하면서 왕의 측근을 호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정 기간 복무한 다음 다른 관직으로 거관(去官)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따라서, 명목은 근위(近衛)이나 무예의 실력이 없어서 도리어 실제 수가(隨駕) 등에는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였다. 왕이 수렵할 때에는 몰이꾼 노릇을 하는 데 불과하고, 세조 때 왕도 친히 산 위에 올라가는데 충의위는 산기슭에 머물러 있을 정도였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충의위의 정액(定額)은 규정되어 있지 않고 장번복무(長番服務)를 하는데, 이들을 위해 종4품 이하의 체아직(遞兒職) 53과(窠)가 마련되어 있었다. 거관은 종4품으로 되어 있으나 계속 복무하고자 하는 자는 정3품에서 그치도록 되어 있고, 보(保)는 없었다.
이들은 군대 복무를 한다기보다는 관료 체제 안에서 관리로서의 진출을 위한 이전 단계에 머물러 있는 셈이었다. 공신 자손이라는 특권 때문에 군역에 복무하는 것이 사실상 관료로의 진출을 의미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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