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회남면 남대문리 고현재(懷南面 南大門里 羔峴齋)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회남면 남대문리 고현재(懷南面 南大門里 羔峴齋)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6. 1. 16:37

회남면 고현재를 가는길은 문의면 염티재를 넘으면 된다. 문의면 염티리에서 염티고개를 너머 내려가다 보면 계곡사이의 커다란 구릉속에 대추나무가 많이 식재되어 있으며  몇채의 민가가 자리잡고있다.자연마을로 지명이 만마루이다.고현재는 이곳 만마루에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慶州氏 版圖判書 將有의 4세손 平澤縣監 滸의 재실로 보은군 회남면에서 청원군 문의면 경계지점으로 이 마을 입구에 뒷산(259m)을 배산으로 남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중수기와 족보기록 등에 의하면 17세기전후 건립된 건물로 2009년 건물 보수 시 ‘康熙 三十二年 癸酉 三月 造作 瓦匠 然麟 吳先伊 貴範 海信’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1694년 전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종 26년(1889)에 후손 寅泰가 쓴 齋舍重修記가 편액 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좌측으로부터 방, 대청, 방,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구조는 급경사의 뒷산을 배산으로 전면에는 높은 기단을 쌓아 대지를 조성하였으며 덤벙주초를 놓고 그 위에 방형 기둥을 세웠다. 다만, 대청 정면은 원기둥을 세웠다.하인방 밑으로는 적벽돌을 쌓는 등 변형이 많이 되었으나 평면형식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사용된 부재의 굵기와 치목기법 등 세부기법에서 조선후기의 고식기법이 나타나고 있다.

 

고현재는 보은지역 재실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건물로 지붕 보수 시에 발견된 기와명문과 중수기, 문중 기록 등 기록이 잘 남아있으며, 목조의 가구기법, 치목기법 등에서 고식의 기법을 잘 보여준다. 또한 기둥을 비롯한 부재에서는 자귀자국이 역력하여 당시 사용된 연장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두께가 있는 나무못이 사용되어 더욱 운치가 있다.김호(金滸 ; ? ∼ ? )는 경주김씨 판군기사사 을식(判軍器寺事 乙湜)의 아들, 판도판서 장유(版圖判書 將有)의 증손자, 생원으로 평택현감(平澤縣監)을 지냈다.[문화재청]

 

청주시 문의면 염티리에서 염티재 정상에 오르면 회남이다. 높지 않은 고개이지만, 회남 쪽은 경사가 급해 길이 몇 구비 돌아 내려가야 한다. 산 중턱 을 내려오면 만마루다. 만마루라 부르는 만지통은 고려시대 최영 장군이 만지창을 만들어 군사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여 만지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최영 장군과 관련해서는 장군이 말 달리기를 연습하던 말바탕이란 곳도 있다. 만마루에는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72호로 지정된 고현재가 고풍스런 자태를 뽐내며 자리하고 있다. 고현재는 김장유의 4세손 평택현감 김호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건립한 건물로 양면이 네 칸, 옆면이 두 칸인 후퇴의 목조기와 팔작집이다. 한 칸은 부엌이고, 세 칸의 양옆은 온돌방이다. 가운데 한 칸은 마루방인데 일반 재실의 건축양식과 다르게 마루방 앞에 둥근 기둥을 세워 사당 형식으로 하였다. 만마루 에서는 두 가구가 과수 재배를 하고 있다. 만마루 뒷산에는 조선 태종 때 평택현감을 지낸 김호라는 분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김호가 포수에게 쫓기는 꿩을 숨겨 살려주었는데, 꿩이 보답으로 이곳에 묘소 를 잡아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보은군지]

 

김호의 묘가 이 곳에 자리를 한 까닭은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김호의 며느리인 옥천황씨와 관련이 있다. 옥천 황씨는 선략장군(宣略將軍) 황헌(黃憲)의 딸로 경주 김씨 문 중 증병조참판(贈兵曹參判) 김처용(處庸)에게 출가하였다. 김처용은 판도판서 김장유의 후손으로 김호(滸)의 아들이며, 충암 김정(淨)의 할아버지다. 그녀는 여자로는 드물게 경사(經史)에 능통하여 자녀들을 손수 교육했다. 이러한 결과로 둘째 아들 김효정(孝貞), 손자인 김황(黃, 첫째 김증손의 장남), 김정 (淨, 둘째 김효정의 둘째)이 문과(文科)에 급제하였으며, 손자인 김적(赤, 김증 손의 셋째), 김광(光, 김효정의 장남), 김이(易, 김효정의 셋째) 등이 소과(小科) 에 급제하였다.또한 그녀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아버지 김호(滸)가 세상을 뜨고 아직 장사를 지내지 않았을 때 포수에 쫓긴 꿩 한 마리가 방에 날아들어 숨겨 주었다. 후에 꿩 이 다시 나타나서 그녀를 이끌어 따라가니 마을 뒷산에 올라 발톱으로 한 곳의 땅 을 파기에 그곳에 시아버지 장사를 지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사람들이 이곳을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갚고자 꿩이 잡아준 명당이라고 한다. 김호의 묘는 회남면 남대문리 만마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