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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부면 덕동리 이명백신도비,묘소(炭釜面 德洞里 李命百神道碑,墓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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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부면 덕동리 이명백신도비,묘소(炭釜面 德洞里 李命百神道碑,墓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6. 11. 20:54

 

탄부면 덕동리 탄부초등학교 뒷편에 자리하고 있는 이명백의 산소와 신도비입니다.

 

 

이명백은 조선 선조 때 의병장으로 본관은 가평(加平), 자는 인노(仁老), 호는 한포재(寒圃齋)이다. 증조부는 익산군수를 지낸 이철영(李 鐵榮), 할아버지는 찰방 이장홍(李長弘), 아버지는 진사 창신교위(彰信校尉) 이경 (李耿), 어머니는 한산 이씨(韓山李氏)로 현감을 지낸 이온(李穩)의 딸이다. 부인은 신평 이씨(新平李氏)로 이천계의 딸이다. 탄부면 구암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중봉 조헌의 문인이다. 6세 때 스스로 ‘충군애친(忠君愛親)’이라 쓰고 이를 행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 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 조헌의 의병에 가담, 부호군 (副護軍)으로 청주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으나 늙은 어머니의 병환으로 고향에 돌아와 금산 싸움에는 참여하지 못하였다. 뒤에 경북 상주(尙州) 중모(中牟), 화령(化 嶺)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인동(仁同)에서 왜적을 크게 무찔렀다. 이때 “한 칼 에는 산하의 기운이요, 삼군은 사직의 마음이라.(一劍山河氣 三軍社稷心)”이라는 시를 써서 자신의 충렬지기(忠烈志氣)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후 보은 마로면 적암으로 돌아와 왜군의 진로를 막아 수차례 싸우다 마침내 중과부적으로 순국하였다. 1812년(순조 12) 탄부면 구암리 충신각 세워지고 1892(고종 29)에 이조판서 (吏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충신각은 1970년 탄부면 하장리로 이건하였다. 묘소는 탄부면 덕동리에 있고 수한면 차정리 후율사(後栗祠)에 제향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