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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면소매리백운사(沙梨面笑梅里白雲寺)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사리면소매리백운사(沙梨面笑梅里白雲寺)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0. 11. 5. 09:39

 

 

 

 

 

 

 

 

 

 

 

 

 

 

 

 

 

 

 

 

 

백운사는 고려 27대 충숙왕(忠肅王) 8년(1321)에 창건되고

조선 영조(1725- 76)때 폐사(廢寺)된 대흥사(大興寺) 옛터에 1930년 하장우(河長雨)스님이 초막 4칸을 세우고 ‘백운사’라 이름한 사찰이다.
대흥사의 창건주는 미상이며, 구전에 의하면 이 곳에서 기거한 스님들이 힘자랑을 하다가 살인을 했기 때문에 폐사되었다고 한다.
백운사 창건이후 수차에 걸친 화재로 소실과 중창을 거듭하였는데, 현재까지 대웅전, 요사채 등의 중건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는 불사가 중단되여 있다
백운사에는 1941년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이 발견되었으나 1965. 12. 4일 증평에 주둔한 군부대장 金某가 가지고 갔다고 하며,

1952년 철제여래좌상(鐵製如來坐像)이 발견되었으나 1953년 분실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5기의 부도가 사찰 입구에 모셔져 있다.

 

 

 

소매리에 위치하고 있다

소매저수지를 끼고 마을기로 접어들어서 계속 가다보면

막다른길인 백운산에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대규모의 공사가 있었으니 무슨연고로인지 중단이 되여 흉물스런 건축물이 아직도 남아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부도는 절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백마산의 원래 이름은 지봉산(芝峯山) 또는 소마산(小馬山)이라 불리었다.

조선 인조(1623~1649) 때 백마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지금 원남면 보천리, 보룡리, 덕정리 마을들을 다니면서 전답의 곡식을 마구 뜯어먹고 있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수일간 말과 실갱이를 하다가 끝내는 덕정리 뒷산에서 붙잡았다.

붙잡아 보니 백마가 어찌나 사나운지 당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덕정리 꽃절의 석굴 속에 가두고 굴 앞을 막아 놓았다.

 

백마는 배가 고프다 못해 있는 힘을 다하여 쌓아 놓은 돌담을 차고 석굴 밖으로 뛰어나와 지봉산으로 갔다.

이후부터 백마는 지봉산에서 숨어서 살다가 노쇠하여 지봉산 남쪽 지금의 사리면 소매리 어은동 뒷산에서 죽었다.

소매동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묻어주니 지금 ‘말무덤’이라고 부른다.

그 뒤 이곳 부근 사람들은 날이 가물면 이 말무덤에 맑은 물 한 말을 길어다가 붓고 농악을 치고 말무덤을 파는 시늉을 하고 제사를 지내면 비가 온다고 한다.

지봉산에서 살다 죽은 백마 때문에 이 산을 백마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