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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리 군수 조유수청간선정비 (校洞里 郡守 趙裕壽淸簡善政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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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리 군수 조유수청간선정비 (校洞里 郡守 趙裕壽淸簡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9. 21. 07:11

 

군수 조후유수 청간선정비 (郡守 趙候裕壽 淸簡善政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조유수는 풍양인으로 1663(헌종4년)에 태어나 1741(영조17년)에 졸하였다.조선후기 돈녕부도정, 오위장, 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입니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의중(毅仲), 호는 후계(後溪).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조형(趙珩)이고, 아버지는 현감 조상변(趙相抃)이다.1683년(숙종 9)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88년 관학(館學)의 유생으로서 박세채(朴世采)의 신원(伸寃)을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694년 천거로 희릉참봉(禧陵參奉)을 거쳐, 장흥고주부(長興庫主簿)·연풍현감(延豊縣監)·옥천군수·회양부사를 지냈고, 이어 선공감부정·장악원정·무주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732년(영조 8) 아들 조적명(趙迪命)이 참판이 되자 통정대부에 올라 첨지중추부사가 되었고, 돈녕부도정·오위장을 거쳐 판결사에 이르렀다. 1741년 조구명(趙龜命)의 시문집인 『동계집(東谿集)』을 왕명을 받아 간행하고 발문을 썼다. 시에 능하였으며, 문집으로 『후계집(後溪集)』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조유수(趙裕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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