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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면 거포리 양천허씨세거지비(靑城面 巨浦里 陽川許氏世居之碑) 본문
청성면 거포1리 마을초입 야산에 있는 양천허씨세거지비입니다.
양천허씨는 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한다. 허선문은 공암(孔巖)[현 서울특별시 양천구] 지방의 호족으로 고려 태조를 도와서 고려 건국에 공로를 세워 양천허씨 집안의 시조가 되었다. 그로부터 자손들이 중앙에 진출하여 크고 작은 벼슬을 하면서 가세를 이어 갔다. 고려 충렬왕 때 허공(許珙)은 첨의중찬(僉議中贊)으로 수상의 지위에 올랐고 양천허씨는 최대의 벌족으로 입지를 굳혔다. 허공의 막내아들 허부(許富)는 정3품 대언(代言)과 선부전서(選部典書)의 요직을 역임하였고, 족보에는 예문관 대제학을 역임한 것으로 나와 있다 양천허씨 [陽川許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거포리는 원래 청산현 서면 황음리에 속했던 마을로서 이 황음리는 후에 구음리와 거포리로 나뉘어 졌다.1739년 기록을 보면 서면 황음리(黃音里)라 하여 135호가 살았고, 1891년 기록에는 10호가 늘어 145호가 거주한 것으로 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일제 조정 때 옥천군에 소속되면서 서면이 청서면이 되었고 마을도 거포리라 이름 지었다.그 후 1929년 청서면이 없어지면서 청성면에 소속되어 현재에 이른다.거포리라 이름 지어진 것은 거흠과 포전 두 마을을 합하면서 거흠(巨欠)의 거(巨)자와 포전(浦田)의 포(浦)자를 한자씩 취하여 거포리라 하였다.
포전은 “개밭골”을 한자화 한 것으로 “개”는 갯벌이 있는 “물가포”와 “밭”은 밭전 “골”은 마을로 포전마을이 되었다. 동광마을은 이곳에 동(銅)이 많이 나는 광산이 있었기 때문에 동광(銅鑛)이라하며 금, 은, 텅스텐 등도 생산되었었다.
자연마을로는 웃개밭골(上浦), 아래개밭골(下浦), 동광, 거흠 등이 있다.거포리 상포마을은 1893년 3월 김연국대접주 집에서 최시형 동학교주와 수뇌부가 회합히여 최시형 교주의 조난예식을 하고 보은집회를 결정한 역사적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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