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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면 도이리 정주영가옥(安內面 桃李里 정주영 家屋)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안내면 도이리 정주영가옥(安內面 桃李里 정주영 家屋)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12. 30. 12:24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4년경에 건립되었으며 대문채, 사랑채, 안채, 벽돌로 축조한 광채가 있다. 안채는 전면 5칸반, 측면 2칸반으로 평면 구성은 중앙에 1칸의 대청 마루를 중심으로 서측에는 건넌방, 동측에는 웃방.안방.부엌을 배치하여 중부지역의 전형적인 민가 평면으로 구성되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개화기 우리 한옥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건축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현재 정주영씨가 살고 있는 이곳은 그의 아버지 정구창(1910-1994) 선생이 살던 곳이다.

 

정주영 가옥은 처음 보아도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느낌을 준다. 1930년에 건축했다는데 기둥과 목재 재질이 밝게 보인다. 안채는 정면 5칸 반, 측면 2칸의 一자형 전후 툇집으로, 중앙의 1칸 반 규모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과 부엌을 갖췄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一자형 평면으 로 대청마루는 없고 중앙에 온돌방을 두고 둘레에 넓은 툇마루를 두었다. 안채는 쌍고주 5량가의 홑처마 팔작지붕이고, 사랑채는 변형이 심하나 3량 구조로 추정되며 홑처마의 팔작기와 지붕이다. 한국 금석학계의 독보적인 국사학자인 임창순이 머물며 서예 작품을 남겼고, 현재 사랑채에 걸려있다.

 

 

도이리桃里는 ‘도리골’을 한자화하면서 한글 발음대로 도리桃라 하였다. 그런데 도리 란 뜻은 복숭아와 오얏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어진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용촌리에서 조 헌 사당인 후율당을 이곳으로 옮긴 후 어진 사람이 많이 탄생하라는 뜻으로 도리라 칭하게 되었다. 한편 안내천이 동대리에서 마을 앞 들을 돌아간다 하여 도리골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을의 이름을 “도리골”이라고 불렀는데 원래는 ‘도리골’이 아니고 ‘다리 골’이란 옛글로 ‘다리’가 ‘들’이란 뜻이 되므로 ‘다리골’은 마을 앞에 ‘들이 있는 골’이 된다. 자연마을로는 양짓말, 음짓말, 못안골 등이 있고, 1945년 도이소류지가 준공되었다. 주작목은 벼농사와 밭작물이며 포도와 복숭아 재배도 한다. 주요 성씨는 광산김씨이다. 매년 봄 후율당에서 의병장 조헌 선생의 제향을 올린다.
문화유적으로 임진왜란 때 활약한 조헌 의병장의 사당인 후율당 내 조헌 충신문과 아들 조완기 효자정려문, 옥천향토유적인 정주영 고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