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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 수북리 송재명,조준홍기념비(沃川邑 水北里 宋在明,曺埈洪紀念碑) 본문
옥천읍 수북리 옥천선사공원에서 안티교를 건너기 전 좌측 야산기슭에 있는 일제강점기시절 동네에 야학을 열어 글을 배우고 문맹에서 탈출하도록 도와준 송재명과 조준홍 두분의 고마움을 잊지않기 위하여 1944년 이 곳에서 배움을 깨우친 제자동문들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조선생준홍기념비(曺先生埈洪紀念碑)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수북리(水北里)는 원래 군동면(郡東面) 수북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옥천읍(沃川邑)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1739년의 기록에는 군동면 수북리라 하여 52호가 살았고, 1891년의 기록을 보면 36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다.
1910년 군동면이 동면이 되면서 수북리도 이에 속하게 되었다.
1949년 옥천읍이 승격하면서 동이면(東二面) 수북리를 옥천에 이관시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수북리라 부르게 된 것은 금강 갯가의 북쪽에 있다 하여 수북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꾀꼬리(화계리)와 동경재(동정자리, 동정리)가 있으며, 화계(花溪)는 마을 위에 복숭아나무가 많아 봄이면 복숭아꽃이 떨어져 하천 가득히 떠내려간다 하여 “꽃내”라 하다가 화계라 부르게 되었다. 꾀꼬리는 음운변화에 따라 갯곶리>깨꽃리>꾀꼬리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한다.
옥천에는 관아의 동쪽에 있는 정자라 하여 동정자(東亭子), 관아의 서쪽에 있는 정자라 하여 서정자(西亭子)가 있었는데, 동정자가 있어 동경재, 또는 동정리, 서정자가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서정리라고 이름 짓게 되었다.
동정자는 옛 옥천상수도 취수장이 있던 금강이 휘도는 언덕에 위치해 주변 경관이 뛰어난 곳에 위치해 있으며 그 터에서 주춧돌로 보이는 돌과 정자를 쌓을 때 축성했던 흔적 등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강릉판관과 선천부사를 지낸 유경 공이 명종 대인 1550년대께 동정자를 건립한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의 동정리는 대청호 수몰로 인해 수몰선 위에 다시 마을을 형성하면서 생긴 곳이다. 현재의 동정리에 선돌 1기가 대청호변 산기슭에 있다. 애초 있었던 자리에서 옮겨진 것이지만 군동초등학교 앞 100m 지점 동이면 남곡리에도 선돌이 있다. 이 두 개의 선돌은 석탄리 안터의 선돌과 달리 각각 60개, 45개의 줄이 그어져 있어 연구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1963년 개교한 군동초등학교는 1998년 학생이 없어 폐교되었다.
송선생재명기념비(宋先生在明紀念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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