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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면 용촌리 중봉선생유상지석(安內面 龍村里 重峯先生遊賞之石)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안내면 용촌리 중봉선생유상지석(安內面 龍村里 重峯先生遊賞之石)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11. 21. 07:00

 

조헌선생의 유상지석이 위치한 곳은 망기대(望氣臺)라고 불리우는 곳으로  옛 용촌초등학교 북편에 중봉 조헌이 하늘의 천기를 보던 유상지석(遊賞之石)을 말하며 이칭(異稱)으로는 관천석(觀天石) 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안내면 용촌리는 산촌마을로 의병장 조헌 이 임진왜란 때 후율정사를 짓고 호국의 의지를 닦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안내면에서 북서부에 위치한다. 동쪽은 월외리, 남쪽은 도율리와 답양리, 서쪽은 보은군 회남면 은운리, 북쪽은 보은군 회남면 노성리와 인접한다. 가산천이 북쪽에서 새터말, 용수말, 솔맥이를 거쳐 서쪽 답양리로 흐른다.

 

 

용촌리는 조선 후기 『여지도서』에 의하면 가산리佳山里에 속하였던 마을 이다. 1830년대 『옥천읍지』에서는 옥천 관문에서 35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 하였고, 1891년 『신묘장적』에도 가산리에 속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산리를 용촌리와 답양리의 2개 리로 분리하여 용촌리가 처음 신설되었다.용촌리 단일이며 자연마을은 용수말, 새터말(신대), 도래밤 티, 솔맥이가 있고 문화유적으로 조헌이 천기를 보았던 유상지석과 중봉약수, 후율정사터, 인봉 전승업의 인봉정사터 등이 남아있다. 가산박물관이 있고 용촌보건진료소가 있다.
벼농사를 짓고 잡곡을 생산한다. 용촌국민학교는 폐교되었다.

 

 

마을회관 뒷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봉선생유상지석(重峯先生遊賞之石)이란 적혀있다. 중봉 선생이 모든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내려와 후학(後學)을 가르치며 이곳에서 하늘을 보고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 하였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자연석을 이용하여 단을 쌓고 그 중앙에 비를 세워 놓았다. 조선후기 그의 후학들이 선생을 그리며 세운 것이라 여겨진다. 스테인으로 보호책을 두르고 있는데 도리어 사진찍기에는 불편한점이 있다. 가정집 뒷편에 자리하고 있어 신경을 쓰지 않으면 놓치기가 쉽다.용수말 입구 가산천 건너편에 선돌이 있다.

 

 

 

안내면 용촌리의 폐교된 용촌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다. 중봉 조헌이 모든 벼슬을 버리고 이 곳에 내려와 후학들을 가르치며 천기天氣를 보 았다고 한다. 큰 바위 앞에 돌을 쌓아 단을 담 들고 중앙에 비석을 세워 놓았다. 이 비는 정방형의 기초석을 땅의 높이와 같이 쌓아 비신을 그 위에 세웠다. 비의 크기는 높이 195㎝, 폭 43㎝, 두께 16㎝이다. 비의 전면에는 예서체로“重峯先生遊賞之石(중봉선생유상지석)”이 라 새겨 놓았다. 그 외에는 아무런 글씨가 없어 제작자나 제작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조선 후기 조헌의 후학들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석에서 동북쪽으로 100여m 떨어진 산 아래 도래밤티마을이 있고, 이 마을에는 후 율정사 옛터와 조헌이 살던 옛 집터가 남아 있다. 지금도 주민들은 이 비석을 세운 자리를 “관천석觀天石”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조 헌이 이 바위 위에 올라 천기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천기를 보고 왜군이 쳐들 어 온다며 방비책을 세우라고 조정에 건의하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