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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면 종암리 효력부위신일묘갈(米院面 鍾岩里 効力副尉申溢墓碣)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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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면 종암리 효력부위신일묘갈(米院面 鍾岩里 効力副尉申溢墓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6. 2. 18:33

 

효력부위라 함은 조선시대 무신 정9품의 품계명입니다.

조선이 건국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가 제정될 때 무산계는 정하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무산계는 1436년(세종 18) 처음으로 진무부위(振武副尉)를 설치하였다가 『경국대전』에 이르러 효력부위로 개칭되었다. 정9품 관직으로는 세마(洗馬)·사용(司勇)·수문장 등이 있다.

이러한 정9품관에게는 1438년에 정비된 녹과(祿科)에 의거하여 실직(實職)에 따라 1년에 네 차례에 걸쳐 모두 조미(糙米 : 벼를 매갈아서 만든 쌀) 10석, 전미(田米 : 좁쌀) 1석, 황두(黃豆 : 누런 콩) 3석, 소맥(小麥 : 참밀) 1석, 정포(正布) 3필, 저화 1장을 녹봉으로 지급하였다.

한편, 정9품에게는 조선 초기에 과전 15결을 지급하였으나 1466년 과전법이 혁파되자 그뒤 직전 10결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직전 지급은 1556년(명종 11) 완전히 폐지되고, 조선 후기 『속대전』에서는 매달 미 10두, 황두 5두를 지급하도록 규정하였다. →무산계      효력부위 [効力副尉]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미원면 종암리 길을 가다가 야트막한 야산에 눈에 띄는 비석이 있어 차를 세우고 찾아드니 고령인 신일의 묘갈입니다.유명조선국효력부위신공묘갈(有明朝鮮國効力副尉申公墓碣)이라고 시작되는 비석입니다. 신일은 1636년 병자호란때 맏형인 좌승지공 신호(申滈)와 함께 인조를 남한산성에서 호위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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