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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량면대전리연안이씨쌍효각(東良面大田里延安李氏雙孝閣)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동량면대전리연안이씨쌍효각(東良面大田里延安李氏雙孝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0. 12. 25. 12:31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시희·이시걸 형제 효자문.

[개설]
이시희, 이시걸 형제는 연안이씨 문강공(文康公) 이석형(李石亨)의 4세손으로 부친과 모친의 상(喪)을 당하여 형제가 함께 정성을 다해 시묘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1722년(경종 2)에 정려(旌閭)가 내려져 효자문이 건립되었다. 그 후 1756년(영조 32) 이시희, 이시걸 형제에게

각각 통정대부(通政大夫)와 장사랑(將士郞)의 벼슬이 증직되었다.

[위치]
충주시에서 산척면으로 가기 전, 왼쪽으로 금가면 도촌리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동량면 대전리 배일 마을로 들어가는 포장 도로가 있는데,

이 도로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연안이씨쌍효각이 있다.

[변천]
원래 연안이씨쌍효각은 1722년 정려가 명해져 1878년 살미면 신당리에 세워졌으나 충주댐 건설로 수몰이 되면서

후손들이 1983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형태]
일각문을 세운 사괴석 담장 내에 남향으로 배치하였으며, 건물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사면에 홍살을 돌렸다.

구조는 원형 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워 이익공 계통의 공포(栱包)를 구성하였고, 익공 끝에는 연꽃 모양을 새겨넣었으며,

창방으로 짜인 기둥 사이에는 화반 한 개를 놓아 주심도리 장혀를 받치도록 하였다. 가구는 굴도리 4량집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현황]
건물은 모두 단청이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편액과 방형(方形)의 대좌(臺座)에 원두갈석(圓頭碣石)으로 된 쌍효비가 안치되어 있다.

편액에는 ‘유명조선 효자 증통정대부 승정원우승지 겸 경연참찬관 이시희 장사랑 시걸형제지문 숭정기원후 세차 임인 사월 일명정려후 삼십오년 병자 증직(有名朝鮮孝子贈通政大夫承政院右承旨兼經筵參贊官李時熙將士郞時杰兄弟之門崇禎紀元後歲次壬寅四月日命旌閭後三十五年丙子贈職)’라고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효도에 대한 옛 전통이 사라져 가고 있는 요즈음 우리 고유 문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연안이씨쌍효각에 대한 종합적인 보고서를 출간, 일목 요연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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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효각 전설]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신당리에서 쌍효각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살미면 소재지에서 단양 방향으로 약 12㎞ 지점에 있는 문화리 신당장에서 우측으로 대미산 지맥을 따라 들어가는 곳에 신당리가 있다. 이 마을에 곱게 단청된 정문이 있는데, 흔히 ‘쌍효각’이라고 한다. 쌍효각 전설」은 이와 관련한 효행전설이다. 형이 이시희(李時熙), 동생이 이시걸(李時杰)인 형제는 효성이 지극해서 효종대왕이 형에게는 승지, 동생에게는 장사랑이란 벼슬까지 내린 일이 있었다. 1723년(경종 2)에 왕명에 의해서 쌍효각이 건립되었다.

[채록/수집상황]
1981년 중원군에서 펴낸 『내고장 전통가꾸기』에 수록되어 있으며,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전설지』에도 실려 있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내용]
조선 효종상노마을이시희·이시걸 형제가 있었다. 어느 해 겨울 노모가 병이 들자 잉어가 약이 된다고 하여 벽대소에 나가니 때가 겨울이라 잉어를 얻을 수가 없었다. 형제가 무릎을 꿇고 앉아 신령께 잉어를 얻을 수 있도록 기도를 하였다. 그러자 그들이 무릎을 꿇은 곳이 녹았으며, 그곳에 커다란 잉어가 한 마리 나와 어머님의 병세를 막았다고 한다. 또한 어느 해 아버지가 노환으로 누워 병석에서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한겨울이라 딸기를 구할 길이 없어 형제는 동굴 속에 들어가 빌었더니 딸기가 주렁주렁 나타나서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노모가 병이 들어 대미산 정상에 올라 산신기도를 드렸는데 선인이 나타나 “어린애 고기를 삶아 먹이는 길밖에 없느니라” 하고는 사라졌다. 그에게는 마침 여섯 살 난 아들이 있었다. 아들을 가마솥에 넣으려는데 갑자기 뇌성이 울리면서 눈앞에 선인이 가로 막아섰다. 시희가 깜작 놀라 아들을 보니 그것은 삼천 년 묵은 산삼이었다. 선인이 미소를 지으며, “내 너를 시험해 보고자 하였다. 너의 효심을 보아 산삼을 주겠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산삼을 달여 먹고 어머니는 병환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이들의 효행이 나라에 알려져 1723년(경종 2) 왕명에 의해 쌍효각이 세워졌다.

[모티프 분석]
쌍효각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겨울 잉어’, ‘한겨울 딸기’, ‘어린애 고기와 산삼’ 등이다. 이 이야기는 이시희·이시걸 형제의 효행전설이다.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 하늘을 감동시켜 한겨울에 잉어와 딸기를 얻는다. 심지어 자신의 자식까지 바치려는 효심에 산신으로부터 산삼을 얻는다. 쌍효각 전설」은 효행전설의 원형적인 서사구조를 온전하게 취하고 있다. 이런 사연을 담고 있는 쌍효각은 2005년 3월 11일 충주시 문화재자료 제46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