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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면 대장리 신유 효자문(蘇伊面 大長里 申維 孝子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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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면 대장리 신유 효자문(蘇伊面 大長里 申維 孝子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3. 10. 16:19

 

신유효자문에 대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유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각입니다.

조선은 유교를 국교시하였기에 효(孝)와 충(忠)과 열(烈)을 중히 여겨 정려를 특히 많이 세웠다. 신유의 효자각도 근방의 사람들을 교화하는 차원에서 신유가 살던 마을에 세운 것이다. 신유의 효자각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의 남쪽 끝부분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충북선 소이역의 앞쪽이며 한라중공업의 뒤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신유는 효자로 자는 이장(而張), 본관은 평산(平山)으로 신상민(申尙閔)의 아들이다. 신유는 아버지가 병환이 들자 낚시를 하여 아버지를 봉양하였으며 산과 들을 다니면 약초를 캐어 약을 달여 드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어머니가 병환이 나자 그 형제가 부친 병환 때와 같이 정성을 다하여 병구완을 하였고 어머니 병이 위독하여 사경을 헤맬 때 손가락을 잘라 주혈하여 회생 연명하였다. 순영(巡營)에서 효행을 장계하니 임금이 듣고 1752년(영조 28)에 정려를 내렸다.

신유 효자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며 사면은 홍살로 막았다. 효자각 안의 상단에 걸려 있는 편액에는 '효자증자헌대부공조판서겸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신유지문상지이십팔년임신정월일(孝子贈資憲大夫工曹判書兼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申維之門上之二十八年壬申正月日)'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효자각의 사방을 벽돌 담장으로 막고 가운데 철문을 세워 보호하고 있으며, 문 왼쪽에는 효행을 기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신유의 효자각은 1752년에 내린 편액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최근에 정비를 하여 문중에서 잘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