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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성면 이목리 신인경유허비(琅城面 梨木里 申麟慶遺墟碑)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낭성면 이목리 신인경유허비(琅城面 梨木里 申麟慶遺墟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3. 15. 06:50

 

청주시 동쪽 삽십리 쯤에 샘물은 맑고 토지는 비옥하며 풍속은 아름다운 마을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아주신씨가 10여세 동안 효도와 화목으로 세세의 모범으로 삼고 시와 예로 가문의 업을 삼으면서 모여서 살아온 이목동이다. 이곳에 터를 잡은 송암 신공의 휘는 인경이요 자는 열경이며 송암은 호니 기신 못지않은 외외한 충성이 있었던 장절공 휘 숭겸의 후예로 아주의 신 휘 익휴는 관향을 연 조상이고 당개에 비견할만한 청명과 직절이 있었던 정숙공 휘 윤유와 피눈물이 떨어진 곳에 갑자기 쌍죽이 솟은 효행과 정혁을 만나 신복을 잊은 절의가 있었던 퇴재 휘 우는 모두 중세의 현조이니 아주신씨야 말로 절로 잠영한 가문이다. 참봉 휘 백과 단인 안동김씨의 차남으로 임술년 11월 20일에 고향집에서 태어나니 준결한 용모와 온후한 품행은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 한번 보면 집안을 감당할 만한 아이임을 알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 세세의 청전인 문사의 업에 거금을 투자한 명성이 있었고 부모님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난 효도는 살아서의 받듦과  돌아가셔서의 섬김을 일심으로 하여 삭망의 상식은 자로의 부미의 효도에 짝이 될 만 하였고 10년의 여묘살이는 이련의 거상에 지남이 있었다. 

 

 

 

영릉 정유년(1657)에 유곡인 문박에서 교목인 이 곳으로 이사하여 이양한 곳으로 별장을 세워서 이목정으로 편액을 거니 봄에 부르고 가을에 따르는 문우들이 왕유의 망천별업처럼 염선함과 동시에 마을의 이름을 이목동이라 칭하니 이 때부터 이목동이 세상에 알려짐이 이원의 반곡 못지않다. 또한 일찌기 후손을 유복하게 함에 남다른 뜻이 있어서 자질들에게 언행을 삼가고 주색을 삼가며 가정은 가난해도 글은 배우지 않을수 없고 세상은 어지러워도 의는 지키지 않을수 없으며 부모님께 효도를 극진히 하고 이웃과는 화목을 도모하라고 훈계했으니 듣는 자는 직청의 경계에 비견한다. 늙어서는 구고의 명학이 하늘에 들리고 예빈시 참봉의 백구지집이 있었으나 주위의 지자들이 모두 관직의 덕에 대칭되지 않음을 애석하게 여겼다. 천수를 누려 병인년12월20일에 정침에서 고종하니 향리의 울음속에 지산리 자좌의 언덕에 장사하니 부인 단인 순천박씨와의 동원 쌍분이다. 슬하에는 문길 윤길 춘길이 있으며 10여 세대가 지내니 오늘날에는 많은 후손들이 혹은 구기를 굳게 지킴으로 고리에서 혹은 세상이 갑자기 변함으로 평향에서 각각 살고 있으나 오직 공의 유훈을 따르기 위해 서 힘쓰고 있으니 저 세간의 조업을 버려진 신짝같이 보고 가문의 법을 허례로 보는 패자와 역손에 비교함에 어찌 많은 닭 가운데에 학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금년 봄에 후손 건식이 공에 남은 향기가 없어지지 않은 이목동의 유지를 차마 황폐하게 둘수가 없어서 이에 단비를 세워서 이 곳을 지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마을이 효자 송안 신공의 구거지임을 알도록 하였으니 아 안으로는 일문의 대대로의 법을 소술하는 상징이 될것이고 밖으로는 사린의 효제를 권면하는 표상이 될것이다. 갑술년 하완 충남대학교 한문강사 월성 정동휘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찬술하였다. [2014년 낭성면지 참조]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이목리에 있으며 건립연대는 1994년이며 관리와 주위 정리등이 필요합니다.  

 

 

 

상당구 낭성면 이목리에 위치하고 있는 아주인 송암 신인경의 유허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송암아주신공휘인경유허비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신인경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청등이 바래 있으며 보호책에도 페인트칠등이 필요합니다. 문중에서나 아니면 관에서 신경을 써야 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