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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보면중원미륵리삼층석탑(水安堡面中原彌勒里三層石塔)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수안보면중원미륵리삼층석탑(水安堡面中原彌勒里三層石塔)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1. 5. 16:15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사지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개설]
중원 미륵리삼층석탑충청도에서 경상도 지역으로 넘어가는 하늘재가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바로 옆에는 미륵사지(미륵대원이라고도 불림)가 자리하고 있다. 석탑은 주변 지형으로 보아 사찰 경내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하여 석탑만 독립적으로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립경위]
중원 미륵리삼층석탑은 사원의 중심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고대의 주요 교통로에 건립되어 있다. 이것은 이 석탑이 사원의 중요 신앙 대상으로 건립된 것이 아니라, 교통로를 다니는 행인들의 무사 안녕과 건강을 불력(佛力)에 의지하고자 하는 선조들의 다양한 신앙 활동의 한 유형으로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유형의 석탑은 고려 초기에 들어와 전국 각지에 많이 건립되었다. 이 석탑의 건립 경위도 주요 지점에 건립하여 간단하게 예배를 올리는 대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위치]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에 위치한 미륵리 사지에서 하늘재 방향으로 500m 정도 올라가면 오른편에 위치해 있다.

[형태]
중원 미륵리삼층석탑은 산의 능선을 일정한 넓이만큼 조성하여 한가운데 세웠다. 기단부는 2층으로 마련하였으며, 탑신부는 3층으로 구성하여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을 보이고 있다. 기단부는 넓게 지대석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괴임대와 면석 등을 결구하여 하층기단을 마련하였다. 하층기단 면석부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撐柱)를 새겼으며, 상대갑석은 상면을 완만한 경사를 이루도록 다듬었다.

상층기단은 면석부에 우주와 탱주를 모각했으며, 상대갑석은 하부에 높은 부연을 마련하였고 상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도록 치석하였다. 상대갑석 상면에는 낮은 탑신괴임을 두어 간략화 내지는 형식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탑신부는 세장한 인상을 주도록 결구되었다. 1층 탑신석의 높이는 2층과 3층에 비하여 상당히 높게 마련되었으며, 옥개석은 상층으로 올라가면서 약간씩만 체감을 주었다.

옥개석은 하부에 4단의 옥개받침을 두었고,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도록 하여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륜부는 노반과 파손된 복발이 올려져 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인상과 각부의 결구 수법이 정연하기는 하지만, 부분적으로 간략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에 들어와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을 계승하여 건립된 석탑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이 석탑은 기단부의 전체적인 결구 수법, 하대갑석 상면의 면석괴임, 상층기단의 우주와 탱주의 모각 수법, 상대갑석의 부연과 상면의 탑신괴임 등이 모두 표현되어 통일신라시대 석탑에서 보이는 치석과 괴임 수법을 거의 그대로 채용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에 비하여 간략화 내지는 형식화의 경향이 보이고 있다.

탑신부는 1층 탑신석과 2·3층 탑신석의 비례, 옥개석의 낮은 체감률, 각 층의 옥개받침을 동일한 단수로 처리한 점, 낙수면의 현수곡선 등이 신라식 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기단부의 간략한 결구 수법과 세부적으로 모방적인 특성이 강하게 반영된 점, 우주를 면석부에 별도로 모각하지 않고 결구 부재의 외곽부로 대체된 점 등은 고려 전기에 건립된 석탑들과 강한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탑신석의 간략한 우주 모각 등도 시대의 하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이 석탑은 고려 초기에 신라 석탑 양식을 모방하여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현황]
석탑은 원위치로 보이며, 기단부와 탑신부 등 붕괴되는 과정에서 부재들이 파손되기는 했지만 원래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 석탑 위치는 주변 지형으로 보아 전망이나 행인들의 기도 위치 등이 고려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중원 미륵리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소규모이지만, 고려 초기 통일신라시대의 전형 양식을 계승하여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 석탑은 비보사탑(裨補寺塔)의 성격과 아울러 여행 중인 행인들이 안녕을 비는 기도의 대상으로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길을 안내하고 표시해주는 표식적 기능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성격의 석탑은 고려시대 들어와 주요 교통로에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