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충주박물관
- 청주박물관
- 상당산성
- 곡산연씨
- 부도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청풍문화재단지
- 효자각
- 티스토리챌린지
- 각연사
- 오블완
- 국립청주박물관
- 경주김씨
- 선돌
- 밀양박씨
- 사과과수원
- 한독의약박물관
- 효자문
- 단지주혈
- 충북의 문화재
- 사인암
- 부여박물관
- 화양구곡
- 문경새재
- 문의문화재단지
- 법주사
- 화양동 암각자
- 보성오씨
- 공주박물관
- 공산성 선정비
- Today
- Total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낭성면 갈산리 사천목씨청은공선영비(琅城面 葛山里 泗川睦氏靑隱公先塋碑) 본문
갈산리에서 현암리로 들어서는 입구에 있는 사천목씨청은공 묘역비석입니다. 산 쪽으로 길을 따라 500여 미터 접근하면 사천목씨 청은공 묘역이 있습니다.
목씨(睦氏)의 유래는 문헌상의 자료가 없어 알 길이 없으나 예전부터 ‘형제상목설(兄弟相睦說)’과 ‘당학사동래설(唐學士東來說)’이 전해져 왔다.
옛날 경남 사천(泗川) 지방에 형제가 살았는데 그들의 우애가 어찌나 깊었던지 그 소문이 널리 퍼져 마침내는 나라에서까지 이 소문을 듣고 그 지극한 형제애를 표창하기 위해서 ‘화목’을 뜻하는 ‘睦’자를 성(姓)으로 내렸다는 것이 ‘형제상목설’의 줄거리이다. 다시 말해 우리 목씨 성은 사회적 덕행자 표창 차원에서 국가[고려]에서 내려 준 사성(賜姓)이라는 것이다.
‘당학사동래설’은 고구려 28대 영류왕618~642)의 요청을 받은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고구려의 풍속을 교화할 현량재사 8인을 파견했는데 그 때 파견된 학사 목충(睦种)이 목씨 성의 시조라는 것이다. 그러나 목충은 당나라와 고구려가 전쟁을 하자 신라로 귀화하지만 그 이후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전해지는 이야기의 전부이다.
오래 전부터 ‘형제상목설’이 세간에 많이 전해져 왔고, 또 문중에서도 대대로 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 사실로 미루어 짐작컨대 목씨는 커다란 영예와 함께 세상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옛날부터 나라에 큰 공이 있는 신하들이나 사회에서 큰 덕을 행한 사람에게 임금께서 성(姓)을 내렸기 때문이다. 목씨 성이 1260년대 고려사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 중기 이후 목씨 성을 얻은 것으로 추측된다. 시조는 고려 때 낭장(郞將, 정6품 무관)을 지낸 목효기(睦孝基)이다.
'통합청주시 > 상당구(上黨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낭성면 현암리 신득치묘비(琅城面 玄岩里 申得治墓碑) (0) | 2022.04.25 |
---|---|
낭성면 삼산리 개문동성적비(琅城面 三山里 開門洞聖蹟碑) (0) | 2022.04.21 |
낭성면 삼산리 장수정(琅城面 三山里 長壽井) (0) | 2022.04.21 |
낭성면 삼산리 보호수(琅城面 三山里 保護樹) (0) | 2022.04.20 |
낭성면 관정리 고령신씨산동세거비(琅城面 官井里 高靈申氏山東世居碑) (0) | 2022.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