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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평면 화산리 군자감임수명의적비(草坪面 畵山里 軍資監林秀蓂懿蹟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진천군(鎭川郡)

초평면 화산리 군자감임수명의적비(草坪面 畵山里 軍資監林秀蓂懿蹟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5. 31. 16:41

 

 

 

화산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생긴 이름으로, 화산리(畵山里)는 화암(畵岩)과 사산(斜山)에서 한 자씩 따서 생긴 지명이다. 화암은 ‘빗길미’ 서남쪽에 있던 마을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4년 이전)에는 ‘두물둔지’로 나오고, ‘화암’이라는 한자 지명이 대응되어 있다. ‘사산’은 본래 ‘서남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빗길미’라고 불렀다. 빗길미는 ‘비스듬한 형상의 산’으로 해석되고 이에 대한 한자 지명이 사산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軍資監正林秀蓂公懿蹟碑(군자감정임수명공의적비)라고 비석의 전면에 적혀 있으며 좌,우,후면에는 임수명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1980년 입니다. 임수명(林秀蓂)에 대하여는 한국학중앙회로 링크해 놓았습니다.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 한국학중앙연구원 [임수명(林秀蓂) 인물 정보] (aks.ac.kr)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 한국학중앙연구원 [임수명(林秀蓂) 인물 정보]

  [부(父)] 성명 : 임춘(林春) [안항(鴈行)]

people.aks.ac.kr

 

 

 

상산 옛고을 구곡땅 세금천의 맑은 정기를 타고 충효로 일세에 본이 되는 분이 있으니 그는 상산인 임수명공이시다. 공은 부사직을 지낸 춘 의 아들로 빛나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공은 선조 임진왜란에 공의 백형인 수전이 의병을 일으켜 죽산봉성에서 왜적과 격전을 치루며 용감히 싸웠으나 부족한 무기와 인원으로 인해 장렬하게 순국하였다.후에 형조참의에 증직되고 명정되어 충신정려문이 세워져 오늘에 전한다. 그런데 정유재란으로 왜구가 다시 침범하자 안성사인 홍계남이 창의하여 의병을 이끌고 진천에서 싸울 때 공은 국운이 위급함을 좌시 할수가 없어 향리에서 의병을 일으켜 홍계남의 의병과 합세하여 북상하는 왜적을 맞아 싸워 물리쳐 기호지방의 안정을 이룩하였다. 이로 인하여 공은 선전관에 제수되고 군자감 정에 증직되었다. 공은 또한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현제우애하고 친족이 화목하였다. 공은 배 한양조씨와 사이에 삼남을 두었는데 첫째는 현감이요 둘째는 통덕랑이며 셋째는 증 판결사이며 현손 봉서는 훈련판관이니 영조 무신란에 공을 세워 왕이 친히 치하하며 손을 어루만지니 황공하여 종신토록 그 손을 금포로 싸매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문중에 자손이 번창하고 효와 절이 특출하니 원근의 종족이 봉선추모의 뜻을 이기지 못하여 비석을 세우고 그 뜻을 새기니 선조의 어질고 두터운 언행과 뜻을 길이 후손에 잇고자 공의 의적을 적어 뒷날에 전한다.

 

구곡리에 있는 임수전부자충신문입니다.

 

문백면구곡리임수전부자충신문(文白面九谷里林秀荃父子忠臣門) (daum.net)

 

문백면구곡리임수전부자충신문(文白面九谷里林秀荃父子忠臣門)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임수전·임현 부자의 정려. [개설] 임수전(林秀荃)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아들 임현(林賢)과 함

blog.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