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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관찰사이근우영세불망비(公山城 觀察使李根友永世不忘碑) 본문

전국방방곡곡/공주(公州)

공산성 관찰사이근우영세불망비(公山城 觀察使李根友永世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8. 10. 07:23

 

 

공산성 입구에 있는 선정비중에 하나인 관찰사 이근우의 불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관찰사이공근우영세불망비(觀察使李公根友永世不忘碑)라고 각자되여 있습니다.

 

 

이근우는 1852년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비변사등록"에 의하면 재임중 재해를 입은 민가에 휼전하고 당시 자주 출몰하던 이양선문제를 보고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1853년 경상감사 홍열모와 함께 상정여미(詳定餘米 / 祥定米의 會錄分으로 보관하던 쌀)의 문제로 소란을 부렸다 하여 파직되였다.

 

 

忠淸監司 李根友의 狀啓에 대해 불에 탄 永同 등의 民家에 恤典을 거행하라는 傳敎  
철종 3년 1852년 03월23일(음)
◯ 충청감사 이근우(李根友)가 영동(永同) 등 읍의 민가가 불에 탔다는 일로 장계에 대해 전교하기를,
“이처럼 바쁜 농사철에 불에 탄 민가가 이와 같이 많다니, 들으니 매우 놀랍고 참담하다. 원래의 휼전 외에 각별히 더 보살펴 주고, 즉시 집을 지어 안주시키며, 불에 타죽은 사람이 만약 생전에 신역·환곡·군포가 있거든 모두 탕감해 주도록 묘당에서 말을 만들어 분부하라.”
하였다.

 

 

조선후기 사헌부대사헌, 판의금부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정보(定甫). 이호민(李好敏)의 아들로 이유민(李有敏)에게 입양되었다.

 

1821년(순조 21) 경과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64년(고종 1) 의정부우참찬, 이듬해 사헌부대사헌이 되었으며, 그해 8월 형조판서직을 거쳐 다시 대사헌이 되었다.

1866년에는 익종대왕(翼宗大王) 옥책(玉冊)의 서사관(書寫官)을 역임하였으며, 그해 11월 다시 형조판서를 지내고 상호도감제조(上號都監提調)를 지냈다. 그해 12월 다시 의정부우참찬에 오르고, 1869년에 사헌부대사헌으로 다시 임명되었다.

1871년 대호군에 있으면서 추상존호도감(追上尊號都監)에서 근무하였다. 이어 판의금부사가 되고 이듬해 9월 이조판서에 올랐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근우 [李根友]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