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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립박물관 관찰사 임순원영세불망비(江陵市立博物館 觀察使任舜元永世不忘碑) 본문

전국방방곡곡/강릉(江陵)

강릉시립박물관 관찰사 임순원영세불망비(江陵市立博物館 觀察使任舜元永世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9. 2. 16:26

비석을 자세히 보아야 글자를 판독할수 있습니다.

 

 

강릉시립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조 관찰사를 지낸 임순원의 선정비입니다 비석의 규격은 높이 123.2 너비 44.5 두께 24.7센티이며 비석의 전면의 각자는 잘 살펴보아야 알수있습니다 관찰사임공순원영세불망비(觀察使任公舜元永世不忘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강릉부사 시절의 선정비가 2기 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강릉부사시절의 임순원의 비가 2기 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승정원일기 434책 (탈초본 23책) 숙종 33년 3월 17일 경오 20/20 기사 1707년  康熙(淸/聖祖) 46년

任舜元을 江原道觀察使에 제수하며 내린 교서

○ 敎守江原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任舜元書

 

 

임순원은 1653(효종 4)∼1723(경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사거(士擧). 이조전랑 임장(任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령 임선백(任善伯)이고, 아버지는 임양(任量)이며, 어머니는 권이량(權以亮)의 딸이다.

1686년(숙종 1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지평·장령 등을 지냈다. 1692년 장령으로 무뢰군관을 거느리고 사사로이 금마(禁馬)를 모아 시장에 내다 판 제주목사 윤정화(尹鼎和)를 탄핵하였다.

1699년에는 장령으로 노론 핵심 세력 김진구(金鎭龜)·김진규(金鎭圭) 형제를 탄핵하여 분란을 일으킨 이조(李肇)를 구원하다가 국왕으로부터 붕당의 갈등을 조장한다는 엄한 질책을 받았다. 이듬해 형조참의로 승진하였으나 판서 김진구와 죄인 처벌을 두고 의견이 대립되어 체직되었다.

이후 승지로 소결(疏決: 죄인을 너그럽게 처결함.)시 국왕이 의금부에 직접 나와서 죄인을 심문하는 것을 반대하였고, 향리에 돌아가서는 동궁 보호를 역설하였다. 1707년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내직으로 돌아왔다.

1710년에는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갔다가 자문(咨文: 중국과 왕복하던 외교문서)을 분실하여 관직을 빼앗겼다. 이후 복관된 뒤 형조참의로 승진하여 서연(書筵)일가를 시강원에서 임금에게 아뢰어 그 뜻에 따라 거행토록 건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임순원 [任舜元]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