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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읍 학림리 강재위불망비(報恩邑 鶴林里 姜在渭不忘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보은읍 학림리 강재위불망비(報恩邑 鶴林里 姜在渭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11. 10. 06:47

 

보은읍 학림2리 경로당 뒷켠에 담벼락 밑에 있는 오위장을 지낸 강재위의 영세불망비 입니다.비석의 전면에는 오위장강재위영세불망비(五衛將姜在渭永世不忘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뒤면에는 비석의 건립시기가 음각되어 있습니다.비석은 광서(光緖)13년(1887년) 정해년(丁亥年)에 세운것으로 되어있습니다.강재위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역은 알수가 없습니다. 비석등을 잘 정리하여 마을회관 앞등 많은 사람이 찾을수 있는곳으로 옮겼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담벼락과 너무 바짝 붙어있어 살펴보기도 어렵습니다.

 

 

함림역(含林驛) 은 보은현에서 북쪽으로 십리 길 함림산성 밑에 있던 역으로 충암 김정(김정)이 순창군수로 재임할 때, 이웃 담양부사 박상(朴祥)과 더불어 중종왕후 신씨의 복위를 상소하였고, 명분에 어긋나는 상소를 하다가 이곳 보은 함림역에 유배되었다. 조선시대 대마(大馬) 2필 기마(騎馬) 3필, 복마(卜馬) 5필을 두었고, 역리 30명과 종 40명이 머물러 있었다. 청주 율봉역(栗峰驛) 찰방의 소속이었다. 강재위불망비도 이 곳에 있던 합림역과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 해봅니다.

 

멀리 담벼락 열에 율봉역찰방을 지낸 허직의 불망비도 보입니다.

 

강재위 불망비는 담벼락과 전봇대 사이에 서 있습니다. 비석이 두동강 난 상태로 세멘접합으로 보수하여 놓았습니다.

 

오위장 (五衛將) 은 오위의 으뜸 벼슬로, 초기에는 종2품관 12명을 두어 그때 그때 각 위를 나누어 맡아 통솔하게 하였으며, 모두 타관(他官)이 이를 겸직하였다. 5위가 평상시에는 주로 입직(入直)과 행순(行巡:도성 내외를 순찰하는 일) 및 시위(侍衛)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5위장들은 외소(外所) ·남소(南所) ·서소(西所) ·동소(東所) ·북소(北所) 등 다섯 위장소(衛將所)에 번을 갈아 각각 1명씩 입직하여 왕의 지명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순행에 있어서는 5위장이 군사 10명을 인솔하고 시간을 나누어 순찰한 뒤 이상 유무를 직접 왕에게 보고하였다. 나라에 경사가 있어 국왕에게 축하를 드리는 조하(朝賀)가 있을 때에는 위장이 그 군사를 이끌고 궁정에 정렬, 시위하였다.임진왜란을 계기로 5위의 기능이 대폭 축소되어 궁성 숙위(宿衛)만을 맡게 되자 5위장의 기능도 이것에 한정되어 품계를 종2품에서 정3품으로 내리고 3명을 증원하되 2명을 문관으로 충당하여 위장소의 사무를 맡아보게 하였는데 이를 조사오위장(曹司五衛將)이라고 하였다. 오위장은 1882년(고종 19) 군제개혁 때 5위와 함께 폐지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위장 [五衛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