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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문화재단지 순찰사박제관영세불망비(文義文化財團地 巡察使朴公齊寬永世不忘碑)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문의문화재단지 순찰사박제관영세불망비(文義文化財團地 巡察使朴公齊寬永世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11. 21. 08:59

 

문의문화재단지 비석군에 자리하고 있는 반남인 박재관의 영세블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순찰사박공제관영세불망비( 巡察使朴公齊寬永世不忘碑)라고 각자되어 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을유년(乙酉年,1885년)3월로 되어 있습니다..

고종실록에 의하면 (고종실록22권, 고종 22년 3월 4일 계묘)경기감사 심상훈과 충청감사 박제관을 서로 바꾸도록 명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비석은 그 당시 이임하면서 세운 비석입니다.

 

 

승정원일기 2920책 (탈초본 134책) 고종 21년 2월 20일 병인 32/32 기사 1884년  光緖(淸/德宗) 10년

○ 甲申二月二十日午時, 上御重熙堂。 忠淸監司入侍時右承旨朴周陽, 假注書金龜燮, 別兼春秋尹相衍·金貞均, 忠淸監司朴齊寬, 以次進伏訖。 上曰, 史官分左右。 命監司進前, 齊寬進前。 上曰, 湖西不惟兩南之接壤, 卽是畿甸之要衝且連海防, 其所愼重, 頗有別焉。 故特此委寄, 須下去悉心對揚也。

 

 

박제관은 1834(순조 34)∼? 조선 말기의 문신이다.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치교(致敎), 호는 율암(栗庵)입니다..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현령 등 지방관을 지냈다. 1867년(고종 4) 경기도암행어사가 되어 탐관오리의 숙청, 우수관리의 표창, 지방제도 개선 등에 공헌하였다.

1871년 안동부사에서 영해부안검사(寧海府按檢使)가 되어 민란을 일으킨 이제발(李濟發) 등 민란관련자 38명을 처형하여 폭동을 진압하였다. 1874년에는 동래부사가 되어 이듬해 일본사신 모리야마[森山茂]와 통상을 교섭하였으나 실패하자, 일본은 운요호(雲揚號) 등 군함 3척을 부산에 파견하여 연습을 빙자, 위협하였다.

민씨파(閔氏派)의 인물로 그 뒤 충청도·경기도관찰사 등을 거쳐 이조판서 및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