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금천동 쇠내의 전설.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금천동 쇠내의 전설.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10. 23. 13:55


청주시 용암동, 금천동, 탑동을 흐르는 개울에서 금을 발견하였다는 전설.

 



조선 후기 철종 때 한 나그네가 걸어서 한양을 가고 있었다. 청원의 쌀안[米院]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에 부지런히 걸어서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무렵 청주성 남문 밖 합수머리에 당도하였다. 개울에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신을 벗고 발을 담갔다.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며칠 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하였다. 발을 물에 담근 채 괴나리봇짐을 베고 누워 잠이 들었다.

새소리에 놀라 잠이 깨니 해가 서쪽 하늘에 걸려 있고, 까마귀 떼가 벌겋게 물든 하늘을 맴돌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 언짢은 마음을 털어버리려고 머리를 흔든 뒤에 물속에서 발을 빼려고 물속을 보았다. 물에 잠긴 두 발은 곱고 하얀 모래가 덮여 있는데, 발밑 패인 곳에 거친 황금색 왕모래가 섞여 있었다. 그는 그게 금이 아닌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틀림없는 금이었다. 물속에서 사금(砂金)을 발견한 그는 설레는 가슴을 진정하고, 근처 언덕의 흙과 돌을 파서 물에 일어 보니 많은 양의 금이 나왔다. 다시 몇 곳의 흙을 파서 일어 보니 모두 많은 양의 금이 섞여 있었다.

이 나그네는 한양 가기를 그만두고 이곳에 헛간과 같은 집을 짓고, 광부를 데리고 금을 캘 덕대를 구하여 금을 캐기 시작하였다. 금은 합수머리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목암산(牧岩山) 호암리[우암산(牛岩山)[338m] 명암리] 방면의 하천을 중심으로 많은 양이 매장되어 있었다. 그는 두더지처럼 들과 야산, 하천변을 일구어 많은 금을 캐냈다.

이 소문이 널리 퍼지자 조선팔도에 흩어져 있던 많은 덕대들과 금쟁이들이 이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래서 이 일대에는 객주와 술집, 밥집이 들어서게 되어 성황을 이루었다. 이때부터 합수머리에서 명암리에 이르는 하천을 ‘금이 나오는 내’라는 뜻으로 ‘쇠내개울[金川]'이라 불렀는데, 지금도 이 이름을 쓰고 있다.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최신 채광기(採鑛機)를 가지고 몇 번인가 이곳 개울에서 채금(採金)하여 많은 금을 채취했다고 한다. 8·15 광복 후에도 근처 사람들이 채금 작업을 하여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쇠내는 것대산(484.0m) 줄기에서 발원하여 명암지에서 내려오는 명암천과 합수머리에서 합하여 금석교 아래로 흘러들어간다. 전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금천동 지역이 신흥 주택단지가 되어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금천이 도로 밑으로 들어가서 볼 수 없다. 또 다른 곳에서도 하천이 복개되는 바람에 볼 수 없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