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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면 행촌리 현감이성항청덕애민선정비(延豊面 杏村里 縣監李性恒淸德愛民善政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연풍면 행촌리 현감이성항청덕애민선정비(延豊面 杏村里 縣監李性恒淸德愛民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3. 2. 23. 12:46

행촌리 비석군중에 있는 연풍현감을 지낸 이성항의 영세불망비이다. 비석에는 현감이공성항청덕애민선정영세불망비(縣監李公性恒淸德愛民善政永世不忘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석의 조성시기는 병신(丙申)년인 1656년이다. 비석의 모양이 특이하여 눈에 띱니다. 비석의 나이가 370년이 넘었습니다.

 

이성항은 [1603년(선조 36)∼1660년(현종 1):58세]. 조선 중기 인조~현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사헌부 장령(掌令)·사간원 사간(司諫)이다. 자(字)는 성구(聖久)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충청도 당진(唐津) 출신으로서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현감(縣監)이광후(李光後)이고, 어머니 연성김씨(蓮城金氏)는 김취경(金就鏡)의 딸이다. 양녕대군(讓寧大君)이제(李禔)의 8대손이고, 병조 판서황정욱(黃廷彧)의 손서(孫壻)이다. 우계(牛溪)성혼(成渾)의 문인으로서, 우암(尤庵)송시열(宋時烈)·동춘당(同春堂)송준길(宋浚吉)과 가깝게 교유하였다.

인조 때 예조 좌랑·병조 좌랑을 거쳐 홍산현감(鴻山縣監)으로 나갔다. 인조 말년에 김자점(金自點)이 정권을 잡고, <강빈(姜嬪) 옥사>를 일으켰을 때,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어린 세 아들을 보호하려고 하다가, 영의정김자점(金自點)의 미움을 받아 쫓겨났다. 효종 때 사헌부 장령(掌令)으로서, 붕당(朋黨)의 폐해를 논하다가 효종의 노여움을 사서, 연풍 현감(延豊縣監)으로 좌천되었는데, 서인 송시열과 송준길의 추천으로 사간원 헌납(獻納)·사간(司諫) 등을 두루 거쳐 사복시 정(司僕寺正)이 되었다. 현종 때 조대비(趙大妃)의 복제(服制) 문제로 일어난 예송(禮訟)논쟁에서 기년설(朞年說)을 적극 지지하였다. 그 후 정평부사(定平府使)를 거쳐 선천부사(宣川府使)가 되었으나, 정평부사로 재임하였을 때 죄인을 잘못 처리하였다고 하여, 서울로 압송되던 도중에 고양(高陽)의 여사(旅舍)에서 병사(病死)하였다.

 

이성항(李性恒) - sillokwiki (aks.ac.kr)

 

이성항(李性恒) - sillokwiki

총론 [1603년(선조 36)∼1660년(현종 1) = 58세]. 조선 중기 인조~현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사헌부 장령(掌令)·사간원 사간(司諫)이다. 자(字)는 성구(聖久)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충청도 당

dh.aks.ac.kr

 

연풍현감 이성항은 승정원일기 효종6년(1655년)에 연풍현감을 지낸것으로 기록되여 있다.

○ 以兵曹忠淸監司狀啓回啓, 忠州牧使朴安悌, 結城縣監柳天樞, 淸風郡守金震標, 槐山郡守李道基, 延豐縣監李性恒, 永春縣監鄭脩等, 推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