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불정면 삼방리 이연경묘역(佛頂面 三訪里 李延慶墓域)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불정면 삼방리 이연경묘역(佛頂面 三訪里 李延慶墓域)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3. 2. 17. 11:19

 

불정면 삼방리 탑촌마을 입구에 있는 광주이씨의 묘역입니다. 입구에는 신도비 3기가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에는 광주이씨 사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유적은 조선중기 사림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인 탄수 이연경 선생의 묘소를 중심으로 선생의 조부인 이세좌, 부친인 이수원, 아들 이호약, 손자 이광악장군의 묘소가 위아래 5대에 걸친 묘역 조성의 전통을 잘 보여준다.   또한 여러 가지 석물들이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조선시대 15세기 말에서 17세기 전반에 걸친 시기의 문인석 조각 수법의 변화상을 한 곳에서 엿보고 학습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연경(1484∼1548)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장길(長吉), 호는 탄수(灘叟)이다. 판중추부사를 지낸 이세좌(李世佐)의 손자이며, 도사 이수원(李守元)의 아들이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섬으로 귀양갔다 1518년 방환(放還)된 뒤 재행(才行)을 겸용한 인물이라 하여 ‘원사인자손(寃死人子孫)’으로 천거되었다. 평소 조광조와 교유로 인하여,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연루되었으나 중종이 어필로 찬인록(竄人錄)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귀양보내지 못하게 하였다. 현량과가 혁파되자 관직을 버리고 공주에 물러가 살면서, 이자(李耔)와 더불어 산수를 주유하며 낚시를 즐겼다.  선생은 자품이 높고 학문과 식견이 뛰어났으며 지조가 있었다. 학문은 세속에서 벗어나 고명한 경지에 마음을 두어 시종 불변하였다. 덕망과 의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방에서 선비들이 모여와 그의 문하가 되었다. 노수신(盧守愼)·강유선(康維善)·심건(沈鍵) 등이 선생에게서 배운 제자들이다. 

 

소이면 비산리 음애동각자(蘇伊面 碑山里 陰崖洞刻字) (tistory.com)

 

소이면 비산리 음애동각자(蘇伊面 碑山里 陰崖洞刻字)

몇번이고 걸음을 한 곳입니다. 이번에는 시원한 물소리가 좋습니다 누가 쌓아 놓았는지 돌탑도 몇기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도 마음하나 얹어 두었습니다. 음애 이자선생의 작은 흔적이 이 곳에

king6113.tistory.com

 

 선생의 손자인 이광악(李光岳)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에서 좌익장(左翼將)으로 김시민 장군과 합세하여 성을 사수하였다. 김시민이 적탄에 맞아 쓰러지자 그를 대신하여 총지휘관으로 싸워 대승을 거두고 왜적을 격퇴시켰다.  1598년 전라도병마절도사로서 명나라군대와 합세하여 금산·함양 등지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포로가 된 본국인 100여명과 우마 60여필을 탈환하였다. 1604년 경기방어사가 되었고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으로 광평군(廣平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