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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성면 갈산리 숭모재(琅城面 葛山里 崇慕齋)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낭성면 갈산리 숭모재(琅城面 葛山里 崇慕齋)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3. 3. 7. 11:51

 

낭성면 갈산리에 있는 보성선씨들의 재실입니다. 숭모재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갈산리로 동네에 접어들면서 동네입구 우사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등성이 밑인 절골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숭모재(崇慕齋)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숭모재 옆으로는 샌드위치판넬조 관리동이 1기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국 노(魯)나라 대부(大夫) 선백(宣伯)의 후손인 시조 선윤지(宣允祉)는 1382년(우왕 8) 명나라 문연각 학사(文淵閣學士)로서 사신의 명을 받들고 고려에 왔다가 귀화하였다. 전라도안렴사가 되어 해안 지방에 침입하여 노략질하던 왜구들을 격퇴하여 민심을 안정시켰다. 유교의 발전과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그 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보성(寶城)으로 은거하여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와 더불어 도의와 예학(禮學)으로 교유하며, 후세 교육에 일생을 바쳤다. 후손들이 보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다.

보성선씨(寶城宣氏)의 울산 입향조는 시조 선윤지의 12세손인 선성징(宣聲徵)이다. 선성징이 1675년(숙종 1) 둔기리 곡리(谷里)[골둔터]마을[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 입거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산 것이 시초라고 전한다.

2015년 통계청이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에는 보성선씨가 울산에 총 598명[남 305명, 여 293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금곡리 금곡마을에는 보성선씨의 후손들이 세거지를 이루고 있다.

 보성선씨 [寶城宣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