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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문의면 서덕길효자각( 文義面 徐德吉孝子閣) 본문
이 효자각은 조선 숙종 32년(1706)에 이천인(利川人) 서덕길(徐德吉, 1599∼1658)의 효행을 기리어 나라에서 세운 정려이다.
지금의 효자각은 1973년에 문의면 도원리에 중건된 후 1997년에 문의문화재단지로 옮겨 세운 건물로 정면 1간 측면 1간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 효자문 편액을 달았다
지금의 효자각은 1973년에 문의면 도원리에 중건된 후 1997년에 문의문화재단지로 옮겨 세운 건물로 정면 1간 측면 1간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 효자문 편액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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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 청주지역의 효자.
[가계]
본관은 이천(李川)으로 양경공(良景公) 서유조(徐愈早)의 후손이다. 청원군 문의면 도원리 출신이며, 아버지는 서봉남(徐奉南)이고, 할아버지는 서복만(徐福萬)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서응년(徐應年)이다.
[생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님 공양에 최선을 다하였다. 병환중인 아버지가 추운 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저수지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는데, 무릎을 꿇었던 자리가 녹으면서 잉어가 뛰어나와 구해드렸다.
또한, 겨울에 산신령(호랑이)의 인도로 아버지가 드시고 싶은 홍시를 구해드렸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머니의 병환에도 약과 음식을 손수 마련하여 드렸으며 더러운 빨래도 직접 하였다. 하늘에 어머니의 쾌유를 빌면서 때때로 손가락의 피를 내어 어머니의 병환을 회생시켜 10년의 수명을 더하게 하여 온 향리가 감동하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효행으로 1646년(인조 24)에 정려되었으며, 승사랑(承仕郞)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에 제수되었다. 청원군 문의면 도원리 마장마을에 있던 효자각은 1997년에 문의문화재단지로 이전되었다.
[묘소]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두모리 저자산에 있다.
제용감이란...조선시대의 관청.
진헌하는 포물(布物)·인삼, 하사하는 의복 및 사(紗)·나(羅)·능(綾)·단(緞)·포화(布貨)·채색입염(綵色入染)·직조(織造)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다. 1392년(태조 1) 7월 새로 관제를 제정할 때 제용고(濟用庫)를 두어 필백(匹帛)·주저(紬苧)에 관한 일을 관장하게 하고, 사(使)·부사·승(丞)·주부·녹사 등의 직제를 갖추었다. 1409년(태종 9) 12월 제용고를 제용감으로 승격시키고 국탕장(國帑藏)을 관장하게 했으며, 판사·감·소감을 새로 두고 사는 판관으로, 부사는 주부로 고쳐 두었다. 1414년 여러 감(監)에서와 같이 감·소감·승을 각각 정·부정·판관으로 다시 고쳤다. 1466년(세조 12) 관제개정 때 녹사를 없애고 참봉을 두어 그대로 〈경국대전〉에 법제화했다. 이때 관원이 정3품 아문으로 제조는 1명을 두었으며, 주부 이상 4명은 구임으로 했다. 정원은 정3품 정 1명, 종3품 부정 1명, 종4품 첨정 1명, 종5품 판관 1명, 종6품 주부 1명, 종7품 직장 1명, 종8품 봉사 1명, 정9품 부봉사 1명, 종9품 참봉 1명을 두었다. 성종대부터는 백관(百官)에게 사여하는 조복(朝服)·공복(公服)을 제용감으로 하여금 만들어 공급하게 했으며, 1460년에는 종래의 도염서(都染署)를 제용감에 합속시켜 직조·염색 등의 일을 제용감에서 소장하게 했다. 〈속대전〉에서 정·부정·첨정·봉사를 폐지했고, 〈대전통편〉에서 인삼 및 사포(紗布)·주단(綢緞)·직조물 등에 관한 일을 폐지했다. 〈대전회통〉에 보면, 새로 주재관(主宰官)이 된 판관의 품계를 따라 정3품 아문에서 종5품 아문으로 옮겨졌으며, 주부는 1명을 늘려 2명을 두었고 직장은 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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