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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면 광덕리 조복공적비(文光面 光德里 趙服功績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문광면 광덕리 조복공적비(文光面 光德里 趙服功績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4. 2. 18. 14:41

문광면 광덕리 칠충사에 있는 순창인 조복의 공적비입니다. 후손들에 의하여 근간에 새로 세워졌습니다.

조복(趙服)1525(중종 20)~1592(선조 25)조선 중기 의 문신으로 자는 안중按例,본관은 순창이다. 부사(府使) 조종(趙滿)의 증손이다.어려서부터 영특하여 9세에는 이미 성인의 기국이 있었다. 군수를 역임하다가 사직하고 향리에서 한가히 지내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족에게 “내 비록 늙고 아무 관직이 없다하나 국난을 당하여 어찌 편안히 앉아 있겠느냐.”라고 이르고 방백여  윤선각을 만나 그 의 군막에서 토적을 도울것을 자원하였다. 그러나 윤선각은 괴산으로 돌아가 군수와 함께 하라고 하였다.이에 괴산으로 돌아와 군수 이우(李現)와 의논하여 우정침 • 윤우 • 조덕수 • 승장 운우 등과 함께 창의 격문을 돌려 의병으로 모집하고 왜적에 대항하니 적이 감히 괴산 경내를 침범하지 못하였다. 영군장 정문용과 괴산의 대장 손응백 등과 함께 충주에 머물고 있는 왜병을 공격하였으나 적의 복병을 만나 정 • 손 두 장군이 먼저 도망치고 병사들도 흩어졌다. 하지만 그는 수십명의 병사를 이끌고 분전하였고 끝내 중과부적으로 전사하였다. 후에 나라에서 병조참판에 추증하고 공적을 치하하였다.【참고문헌】『괴산군삼강록』

 

비석의 전면에는 충신선무공신병조참판순창조공복공적비(忠臣宣武功臣兵曹參判淳昌趙公服功績碑)라고 적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