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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부면 임한리 유홍사적비(炭釜面 林閑里 兪泓事蹟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탄부면 임한리 유홍사적비(炭釜面 林閑里 兪泓事蹟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4. 2. 28. 08:34

임한리 솔밭에 있는 선조때 좌의정(左議政) 유홍(兪泓)의 광국훈공(光國勳功)의 사적을 기록한 비로 1998년 후손들이 숲속에 세웠다.임한리는 기계유씨 杞溪兪氏 들이 대성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충목공송당유선생광국사적비( 忠穆公松 兪先生光國事蹟碑)라고 적혀있으며 좌우,후면에는 사적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임한리는 옛 조선시대 상주목(尙州牧)의 임언부곡(林堰部曲)이 설치되었던 지역으로 뒤에 보은군(報恩郡) 왕래면(旺來面) 관할지역으로서 숲이 많으므로 임한이 또한 임한(林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임한리(林閑里)라 해서 탄부면(炭釜面)에 편입되었습니다. 임한리에 자리한 솔밭은 사진작가들의 출사장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출사장소로 유명한 임한리 솔밭입니다.

유홍 은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지숙(止叔), 호는 송당(松塘).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유기창(兪起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서 유여림(兪汝霖)이다. 아버지는 생원 유관(兪綰)이며, 어머니는 의령 남씨(宜寧南氏)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남충세(南忠世)의 딸이다.

 

1549년(명종 4)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3년 별시 문과에 급제, 승문원 정자 · 전적(典籍) · 지제교 · 지평(持平) · 장령(掌令) · 집의 등 문관 요직을 역임하였다. 1557년 강원도 암행어사로 나가 민심을 수습하고, 1563년 권신 이량(李樑)의 횡포를 탄핵하였다.이듬해 시관(試官)으로 이이(李珥)를 뽑았으며, 1565년 문정왕후(文定王后) 상사 때에는 산릉도감(山陵都監)으로 치산의 일을 맡았고, 춘천부사가 되어서는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

 

1573년(선조 6) 함경도병마절도사로 회령부사를 겸했고, 그 뒤 개성부유수를 거쳐 충청 · 전라 · 경상 · 함경 · 평안도의 관찰사와 한성판윤 등을 역임했다.1587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아들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았으며, 1589년 좌찬성으로서 판의금부사를 겸해 정여립(鄭汝立)의 역옥(逆獄)을 다스렸다.

이러한 공으로 1590년 종계변무(宗系辨誣) 1등, 토역(討逆) 2등에 책훈(策勳)되어, 평난공신(平難功臣) 호를 하사받고 보국숭록대부(輔國崇錄大夫) · 기성부원군(杞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이조판서 · 우의정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했고, 평양에서 세자와 함께 종묘사직의 신위를 모시고 동북방면으로 가 도체찰사를 겸임하였다. 그리고 이천(伊川)에서 격문을 여러 도로 보내 각 도의 의병들을 격려, 지휘해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이듬해 왜적이 서울에서 물러나자, 먼저 서울에 들어와서 불탄 도성을 정리하고 전재민을 구호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594년 좌의정으로서 해주에 있는 왕비를 호종하다가 객사하였다. 성품이 중후관대하고, 의리를 위해 기개를 굽히지 않았으며, 시문에 뛰어났고 장서가 많았다. 유저로는 『송당집』 4권이 있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유홍 선생의 발자취는 불목리 소재에 있는 기계 유씨 영모재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천장에 숨겨져 있던 광국지경록판목(光國志慶錄板木)이 발견되었는데, 판목은 조선시대 종계변무( 宗系辨誣)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학술적가치가 높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64호로 등록되어 있고, 현재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광국지경록판목(光國志慶錄板木)은 선조가 1587년 종계변무(宗系辨誣)을 마치고, 기념하기 위해 신하들과 함께 시를 짓고 화답한 내용을 모아 1701년 편찬한 것을1744년 영조 24년에 다시 새긴 판목(板木)이다. 종계변무(宗系辨誣)는 명(明)에 조선 왕조의 잘못 전해진 가계에 대해 오기된 것을 정정요구 한 내용인데, 그 과정과 내용을 이곳에 기록해 놓은 것이다. 


장안면 불목리 영모재(長安面 佛目里 永慕齋) (tistory.com)

 

장안면 불목리 영모재(長安面 佛目里 永慕齋)

영모재는 기계유씨(杞溪兪氏) 보은지역 입향조인 부호군(副護軍) 유은(兪檃)의 재실로 사망년도인 1690년에서 광국지경록 판목(光國志慶錄 板木; 유형문화재 제164호)의 제작 시기인 1771년 사이에

king6113.tistory.com

종계변무 [宗系辨誣]란  조선 개국 초부터 선조 때까지 약 200년간, 중국 명나라 서적에 왕조의 조상이 잘못 기록되어 있는 것을 고치도록 주청한 일을 말합니다. 조선 개국 초부터 선조 때까지  200년간, 중국 ()나라 서적에 왕조의 조상이 잘못 기록되어 있는 것을 고치도록 주청(奏請) 일로 명나라 태조실록 대명회전에는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 이인임의 아들로 되어 있어 여러 차례 고칠 것을 요구하였다. 1584(선조 17)년에 주청사 황정욱 등을 보내어 이를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