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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원면 문주리 석불(大召院面 文周里 石佛)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대소원면 문주리 석불(大召院面 文周里 石佛)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4. 10. 15. 12:20

일제강점기시절 석불과 석탑의 모습입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 지역에는 수주리, 월은리, 문박리, 팔봉리가 있었다. 이 중 문박과 수주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문주리 (文周里)라는 명칭이 처음 만들어졌다. 문주리에 대한 기록은 1760년에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처음 나온다. 당시 유등면은 주음성리, 산정리, 팔봉리로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다. 팔봉리가 현재의 문주리이다. 1898년에 나온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는 현재 문주리의 행정리를 이루는 팔봉, 수주, 월은이 나온다. 1912년에 나온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 보면 팔봉, 수주, 문박, 월은이 나온다.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이들 네 개 마을이 합쳐져 문주리가 처음 생겨났다. 그리고 유등면이 이안면과 합쳐지면서 문주리가 이류면[현 대소원면]에 속하게 되었다. 문주리는 이후 충주군에 속했다가 1956년 충주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다.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되면서 대소원면 문주리는 다시 충주시에 속하게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탑동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좌상. 처음에는 노천에 방치되어 있던것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탑동마을 주민들이 흙벽돌로 보호각을 만들어 봉안한 불상이다. 원래 불상 옆에는 문주리 오층석탑이 있었으나 1999년 도난당했다고 한다. 2005년 5월 6일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현재는 보호각을 새로지어 잘관리되고 있다.


충주 문주리 석조여래좌상은 편단우견의 항마촉지인 불상으로, 팔각연화대좌와 광배가 함께 전한다. 그러나 석불·광배와 대좌의 석질이 다르고, 조각 솜씨도 달라서 석불과 광배는 후대에 다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머리는 나발이며 육계는 표현되지 않았다. 이마에는 백호공이 있으며, 얼굴에 비해 코는 크고 입은 작으며 눈은 반개한 모습이다. 양쪽 귀는 짧고 어깨는 약간 위로 올라간 모습이며 목에는 삼도의 흔적이 보인다. 법의는 편단우견인데 옷주름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게 처리하였으며 등 뒤에까지 옷주름을 표현하였다.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리고 있으며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대좌는 하대석과 중대석만 남아 있고, 상대석은 깨어져서 스님이 기거하는 집에 방치되어 있다. 상대석의 연화문은 불상과 달리 조각 수법이 매우 뛰어나다. 기단석에는 안상이 조각되고 하대석에는 복련을 돌려서 표현하였다. 광배는 불상 뒤편에 따로 떨어져 있으며, 원형의 석조광배로 두광에는 중심 원좌가 있고 주변에 연화문을 두른 원광이 있다. 신광에는 2줄의 선을 융기시켰는데 주변에 화염문의 흔적이 보인다. 불신의 표현이 자연스럽지 않고 조각이 소략한 반면 대좌의 조각은 뛰어나다.

충주 문주리 석조여래좌상은 석불·광배와 대좌의 석질이 다르고 조각 솜씨도 달라서 대좌만 원래의 것이고, 석불과 광배는 후에 조성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불상은 불신의 표현이 자연스럽지 않고 조각이 소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