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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면 효자 임기백정려각(北二面 孝子 任岐白旌閭閣) 본문
임기백(任岐白, 1777~1803)은 조선시대 효자. 본관 풍천. 자 공성(公成), 호 영은(靈隱). 청원군 북이면 선암리 출신. 일찍이 7세 때 소학을 배우고 효 사상을 깨우친 이래, 일생 동안 뛰어난 효행으 로 만인의 사표가 되었다. 어린 시절, 험한 산 속에서 약초를 캐고 깊은 물에서 고기 를 낚아 병약한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그러나 공의 나이 15세 때 부친은 이미 병이 깊 었다. 밤에도 눈을 붙이지 않고 성심으로 간병했으나 아버지의 병은 크게 호전되지 않 았다. 공은 몇 차례나 손가락을 베어 수혈하니 부친은 마침내 회생하였다. 그 후에도 아버지를 지성으로 봉양한 결과 부친은 천수를 다하였다. 23세 때 부상(父喪)을 당하 였다. 산소 아래 초막을 짓고 3년간 거의 식음을 전폐하면서 못 다한 효를 다하다가 끝내 몸이 쇠잔하여 25세에 순효(殉孝)하였다.1887년(고종 24) 북이면 선암리 1구 산39-6번지에 정려가 세워졌다. [문헌] 북이면지.
이 효자각은 조선 고종 24년(1887)에 풍천인(豊川人) 영은(靈隱) 임기백(任岐白, 1777∼1803)의 효행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
지금의 효자각은 1932년에 중건하고 1986년에 중수한 건물로 정면 1간, 측면 1간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는 효자정문 편액을 걸었다.
이 밖엔 1932년에 임헌찬(任憲瓚)이 지은 중건기(重建記)와 1986년에 임걸순(任傑淳)이 짓고 이주엽(李柱燁)이 쓴 2차중건기 목판이 걸려 있다.
부친이 위중하자 단지주혈하여 부친의 목숨을 회생시키고 부친이 천수를 다하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3년간의 시묘생활로 인하여 몸이 쇠진하여
25세에 순효하니 고종임금이 정려하여 효자문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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