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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면 영하리 변인규공적비(北二面 靈下里 卞仁圭功蹟碑) 본문

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북이면 영하리 변인규공적비(北二面 靈下里 卞仁圭功蹟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5. 3. 22. 16:00

북이면 영하리에 자리하고 있는 초계인 변인규의 공적비입니다.

변인규는 신묘년(1771)에 태어나 을미년(1835)에 졸 하였습니다.향년 65세 입니다.

일찌기 조실부모하였으나 천성이 선하고 형제간에 우의로 타인의 귀감이 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송촌변공인규공적비(松村卞公仁圭功蹟碑)라고 각자 되었으며 좌우 후면에는 변인규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변인규는 초계변씨 우산공파의 손으로서 마을일과 함께 종중의 일에 관여 하면서 천안 직산면의 종중산 50여 정보가  타인에게 점거된것을 확인하고 1827-1830년 까지 3년여 동안 노력하여 대종회 소유로 돌려 놓았습니다.

또한 세금미납등으로 국유화 되었던 북이면 초정리 임야 50정보를 종중의 사람들과 협의하여 불철주야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여 우산파 종중 소유로 돌려 놓았습니다.

 

또한 영하리 주민들의 추대로 마을 일을 맡아 보면서 증평 율리 200여정보의 나무의 채신(採薪)지를 놓고 남면과 북면의 주민들의 분쟁이 빈번한바 상호협력하도록 종용하여 분쟁을 해결하였다.

또한 종중일에 관여 하면서 종산위토와 관련 문제점등을 해결하는 등 종중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비석은 1988년 김일현이 찬하고 배대규가 서 했으며 초계변씨 우산공파종중일동에서 건립하였습니다.

 

공적비 위로 부인인 인천채씨와 함께 무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초계 변씨 는 시조는 고려 성종 때 문하시중을 지낸 변정실(卞庭實)로 팔계군(八溪君=草溪)에 봉해졌음으로 본관을 초계로 하였다. 중시조는 조선초 직제학을 지낸 변효문(卞孝文)이고, 입향조는 13세손 변충남(卞忠男)으로 장예원 판결사를 지내고, 1570년 경 충남 직산에서 내수읍 비홍리로 옮겨와 정착하면서 이 일대가 세거지가 되었으며 현재 아직도 많은 후손이내수읍과 북이면 등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