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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면 단평리 장사억공적비(甘谷面 丹坪里 張師億功績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감곡면 단평리 장사억공적비(甘谷面 丹坪里 張師億功績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5. 8. 24. 16:56

감곡면 단평2리 마을회관 마당에 이규한 송덕비와 같이 있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단암장사억공적비( 丹菴張師億功績碑)라고 각자 되어 있으며 비석의 후면에는 공적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장사억 선생은 감곡면의 교육자이자 초대 면의원이었다. 또한 인동장씨 가문으로 대대로 유교적 학풍을 유지해온 집안에서 자라 한학과 유교적 성향이 깊었던 인물이 었습니다.부친이신 장진문 옹이 돌아가시자 유교예법대로 삼년상을 치루셨다고 합니다.

 

공적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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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청년시절부터 남다른 애향심과 해박한 지식으로 주민계몽의 횃불을 높이들고 왜정치하 식민지 정책으로 인한 한민족 문화의 암흑기에 신문학 강습소를 개설하여 본동은 물론이요 인근부락 미취학 청소년 백팔십여명을 훈육하였고 해방 후에는 황폐된 동유림에 나무를 심고 계곡에 제방을 막아 물 가두는 치산치수 사업에 앞장서니 산야에 토사유실을 방지하고 가뭄에 타는 붉은 들(丹坪)에 전답마다 물이 넘쳐 歲歲年年 풍년드니 풍요롭고 인심좋은 마을을 이루었더라. 더욱이 선생은 서기1970년에는 垈地 四百여평을 부락에 흔쾌히 희사하여 주민의 숙원이었던 마을회관 및 경로당과 각종 복지시설과 마을을 마련케하여 축복받은 아들 딸들이 활기차게 뛰고 자라 나라에 일꾼을 길러내니 이름하여 福子洞이라 하였더라. 이에 주민일동의 뜻을 모아 옷깃을 여미고 선생의 높은 공적을 칭송하여 이 글을 다듬어 길이 후손에게 전하고자 함이라.서기 1992년2월15일

 

장사억씨는 일제강점기인 1940년 3월에 지금 단평2구 구판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옛 서당을 개조하여 인근의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을 모아 일본어, 서예, 산수 등을 가르쳤으며 우리나라 국어는 일본인들의 눈을 피해 몰래 가르쳤다. 학생 수는 1943년에는 180명이 되었으며 교육시간은 일반 학교와 같이 아침 9시부터 오후 5∼6시까지 방학 도 없이 지도했고, 3학년을 마치면 매괴학교나 감곡학교로 편입을 했다고 한다. 학생 이 많아지자 임재구 교사를 채용해 1학년을 지도하게 했고 2, 3학년은 장사억이 직접 지도했다. 수업료는 없었으며 책은 선생님이 헌책을 구해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고 한다. 해방 이후 폐교되었다. [감곡면지]

 

장사억선생의 사진은 감곡면지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