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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동 호암지비석군(虎岩洞 虎岩池碑石群) 본문
충주시 호암동에 있는 비석군입니다.
비석은 충주수리조합과 관련된 근래부터 일제강점기 시절의 비석이 3기이며 호암지에서 익사사고등으로 죽은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비와 또한 그와 관련된 석함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에 있는 충주수리조합장을 역임한 조명규의 공덕을 기리는 비. 구체적인 공덕 사항은 알 수 없으나 충주수리조합원 일동 명의로 조합장이던 조명규의 공덕을 기려 1959년 4월 현 위치에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충주시 호암동에 위치한 호암지의 서쪽 언덕, 위령 묘역 내에 박준하 공적비 및 일본인 위령탑, 호암지 건설 성공탑 등과 같이 위치하고 있다.비좌개석의 형태로 지붕돌 72×45.5×34.5㎝, 비신 42×15.5×115㎝, 대좌 74×45×20㎝의 크기이다.비제는 10×8㎝ 크기의 해서체로 ‘고조합장조공명규공덕비(故組合長趙公命奎功德碑)’라 음기하였으며, 뒷면에는 공덕 내용도 없이 ‘단기4292년 4월 일립 충주수리조합원일동(檀紀四二九二年四月日立忠州水利組合員一同)’이라 음기되어 있다. 현재는 주택가에 잠식당하여 마치 호암지 제방처럼 남아 있는 곳에 약 100여 평의 위령 묘역이 설치되었고, 묘역 안의 앞쪽 오른쪽에 조명규 공덕비, 왼쪽에 농지개량조합장 박준하 공적비, 호암지 건설 성공탑이 서 있다. 한국농촌공사 충주·제천지사 시설팀에 의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에 있는 전 중원 농지개량조합장 박준하의 공덕을 기리는 비. 박준하(朴準夏)는 1961년 충주 호암지 호안(護岸) 및 노후 시설물 보수를 비롯하여, 1964년 용교 양수장 시설 준공, 1966년 풍동지구·금릉지구 양수장 설치 및 경지정리사업 시행 준공을 하였다. 1967년에는 봉방지구 경지정리사업 시행 준공을 하였고, 1968년에는 단월지구 경지정리사업 시행 준공을 하였으며, 1970년에는 금동지구 설치사업을 시행 준공하였다. 1972년에는 가금지구 경지사업 시행 준공을 하였으며, 1973년에는 전년 홍수로 인한 금능·금가·가금[현 중앙탑면]·용교·달천 양수장 피해 복구 공사 시행 준공을 하여 전천후 영농을 가능케 함으로써 조합원의 복리 증진에 기여한 공적이 크다. 이에 1982년 11월 중원농지개량조합원 일동 명의로 호암지 옆 농지개량조합 위령 묘역 내에 건립하였다. 비좌개석의 형태로 지붕돌은 화강암이며 68×43.5×45㎝, 비신은 오석으로 42×16.5×118.5㎝, 대좌는 67×42.5×8㎝의 크기이다. 비제는 7×6㎝ 크기의 해서체로 ‘전중원농지개량조합장박공준하공적비(前中原農地改良組合長朴公準夏功積碑)’라 음기되었으며, 뒷면에는 3×3㎝의 해서체로 박준하의 공적이 음기되어 있다. 호암지 서쪽에 위치한 위령 묘역에는 호암지를 축조하다 사망한 일본인을 위한 묘역으로 위령탑, 호암지 축조 성공탑, 조명규 공덕비 등 2기의 탑과 2기의 공적비가 위치하고 있다. 한국농촌공사 충주·제천지사의 시설관리팀에 의해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편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일본인 수리조합장 영목정일의 비석과 함께 위령비와 그리고 그와 관련된 석함등의 안내판에는 친일청산관련에 대한 법규가 문자화 되어 있어 시민들이 이해하기가 편하게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 비석의 건립 배경: 1933년, 충주수리조합장 영목정일(일본인)의 사업을 기리기 위해 조선인 일동이 세웠습니다. 비문에는 영목정일이 1922년 수리조합을 창립하고 11년간 헌신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역사적 맥락: 이 비석은 일제가 한국을 자국 식량 공급지로 만들기 위해 저수지와 수리조합을 강제로 설립·운영한 산미증식계획의 일환으로, 당시 달천평야의 토지 절반을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었고, 한국인 농민들은 토지를 잃거나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비석 내용: 비문에는 "영목정일은 일본 야마나시현 출신으로, 1922년 수리조합을 창립하고 11년간 헌신했다"는 내용과, 조선인들이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최근 동향 및 해석
- 한글 번역 및 안내판 설치: 2023년, 90년 만에 한글로 번역된 설명판이 충주시에 설치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비석의 역사적 맥락과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농민에게 미친 영향을 명확히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문화유산 등재: 충주시 문화유산 목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일제강점기 농업 정책의 실상과 당시 농민들의 아픔을 함께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네이버 AI}
충주 호암지 수리조합장 기념비 90년 만에 한글로 번역 - 뉴스1
충주 호암지 수리조합장 기념비 90년 만에 한글로 번역
충주시 '한국을 영구적 식민지로 만들려던 것' 풀이 충북 충주 호암지 충주수리조합장 영목정일 사업 성공 기념비가 90년 만에 한글로 번역됐다.5일 충북환경운동연대(이하 환경연대)는 호암지
www.news1.kr
호암동 충주수리조합장영목정일씨사업성공기념비(虎岩洞 忠州水利組合長鈴木政一氏事業成功記念碑)
호암동 충주수리조합장영목정일씨사업성공기념비(虎岩洞 忠州水利組合長鈴木政一氏事業成功
충주수리조합은 1922년 4월 1일 설립 인가를 받고, 동년 9월 13일부터 충주군 충주면 지역에 관개 시설 공사를 착공하여 1924년 3월 31일 준공하였다. 최초 몽리 면적은 394정보였으나 1931년 기록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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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수리조합은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수리조합. 충청북도 충주군 충주면 일부 지역의 관개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22년 4월 1일 설립 인가를 받고, 동년 9월 13일부터 충주군 충주면 지역에 관개 시설 공사를 착공하여 1924년 3월 31일 준공하였다. 최초 몽리 면적은 394정보였으나 1931년 기록에는 510정보로 증가하였으며, 이 면적은 그 이후에도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1927년 조합장은 영목정일(鈴木政一)이 맡았고, 1929년 최지환으로 교체되었다가 1931년 다시 영목정일(鈴木政一)로 교체되었다. 1935년에는 굴정좌전차(堀井左傳次)가 맡았다가, 1939년 중천룡장(中川龍藏)으로 교체되었다. 충주수리조합은 몽리 구역 내의 토지에 대해서 과도한 수리조합비를 징수하고 농사 개량을 명분으로 농민들에게 판매 비료의 사용을 강요하였다. 1931년 수리조합비는 1등지의 경우 단보 당 7원 32전으로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영세한 조합원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이 위령탑은 호암지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서 1938년 충주수리조합에서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호암지에서는 1933년 7월 9일 충주 공립보통학교 학생 2명이 수영을 하다 죽었고, 1936년 6월 6일에는 20여 명이 뱃놀이하다가 배가 전복되어 15명이 빠져 죽었으며, 1937년 7월 21일과 22일에 한 사람씩 빠져 죽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보다 두 달 전인 1937년 5월 17일에는 호암지 통관 수리 공사를 하던 일본인이 익사한 일도 있었다.부산일보 1938년 4월 15일(금) 자 신문 기사를 보면, 호암제(虎巖堤)에서 수십 년 동안 ‘마(魔)의 연못’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익사자를 내자 그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400원(현재 가치로 약 8백만원)을 들여 건립을 추진한 것으로 나와 있다.위령탑은 시멘트와 호박돌을 섞어 쌓은 기단 위에 높이 1m 정도의 돌이 서 있는 모습이고, 돌에는 ‘慰靈塔(위령탑)’이라고 새겨져 있다. 기단 앞면에는 ‘충주수○○합(忠州水○○合)’이라 적힌 석재가 박혀 있다. 왼쪽에는 옥개*를 갖춘 석함 형태의 구조물이 위령탑과 같은 형식의 기단 위에 놓여 있다. 이는 혼령을 위로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일제 강점기의 잔재물로 친일 청산 관련 법규에 따라 안내판을 세운다.

[충북일보] 충주 호암지 위령탑 주인공 밝혀졌다
[충북일보=충주] 충주시민들이 즐겨 찾는 유원지인 충주호암지 서북쪽 제방위 비석터에 세워져 있는 위령탑의 주인공이 밝혀졌다. 호암지 서북쪽 제방위 산책로 옆(문화동 3887-1) 일대에는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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