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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성면 앙성면사무소비석군(仰城面 仰城面事務所碑石群) 본문



앙성면사무소 정원한켠에 세워진 비석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독립투사광주이공운암병택기념비(獨立鬪士廣州李公雲唵秉澤記念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석의 후면에는 독립투사 이병택의 업적이 기술되여 있습니다.
이 碑는 國家와 民族을 위하여 獨立鬪爭에 몸을 바치신 先生의 偉業을 기리고저합니다. 先生은 1887년 6월8일 永竹里에서 李允會의 長男으로 出生뜻한바 있어 서울에서 修學中 乙巳保護條約으로 기학귀가하여 隱遁 중 義兵에 參加하였으나 義兵將의 逮捕로 서울 潛伏中 庚戌合邦으로 歸家 國運을 恨歎하다 再上京하여 獨立運動에 參加하여 한용운과 抗日鬪爭을 상의 長安寺에서 僧으로 地方徘徊中 日警에 被檢 春川監獄에서 服役하다 脫走 박창환의 도움으로 奉天에서 장덕수와 活躍 歸國後 여러사람들과 同志糾合中 獨立萬世運動에 參加 上海로 가다 鎭南浦에서 逮捕되어 西大門,大邱刑務所에서 收監中 脫出 上海에서 金九의 도움으로 新義州署 襲擊과 朝鮮總督暗殺用의 爆彈製造中에 祖國光復으로 歸國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앙성지부상을 歷任하시니 이 業績을 讚揚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우도다

홍종한은 1946년 초대 앙성면장을 지냈으며, 초대와 제2대의 충청북도의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1952년 충주수력발전소추진위원장, 1956년 충주비료공장추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맡아서 충주 지역의 산업 시설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59년에는 앙성중학교 제2대 재단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지역 교육 활성화에 공헌하였다.1990년 면민들이 홍종한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용포리에 석운남양홍공종한기적비(石雲南陽洪公鐘漢記績碑)를 세웠다.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용포리에 있는, 앙성면장을 역임한 김채수의 공덕을 기리는 비. [건립경위] 1946년 면 서기로 출발하여 1985년 11월 9일 앙성면장 퇴임 때까지 헌신 봉사한, 김해김씨 안경공파(安敬公派) 참판공(參判公)의 후손인 김채수(金採洙)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전 중원군 교육감 박재륜이 찬하여 앙성면민의 이름으로 비를 건립하였다. [형태] 비좌개석의 형태로 받침돌 100×70×25㎝, 비신은 오석으로 45.5×131×21㎝, 지붕돌은 화강암으로 75.5×52×48.5㎝이다. [금석문] 비 앞면에는 10×8㎝의 해서체로 ‘전앙성면장채수공로비(前仰城面長金採洙功勞碑)’라 음기하였고, 앞면 오른쪽에 4×3㎝ 크기로 ‘애향위민행적찬연헌신봉사영세구전(愛鄕爲民行跡燦然獻身奉事永世久傳)’이라 새겼다. 왼쪽 옆면에는 ‘김해김씨안경공파참판공후손(金海金氏安敬公派參判公後孫)’, 오른쪽 옆면에는 ‘서기 1946년 6월 12일 서기 발령, 서기 1985년 11월 9일 면장 퇴임, 면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우노라”라고 음기하였다. [현황] 김채수 공로비 외에도 김희현 청백비, 이강영 영모비, 이병택 기념비, 홍종한 기적비 등 5기의 비석이 앙성면사무소 앞 큰 느티나무 아래에 있다. [의의와 평가] 40여 년 동안 공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주민과 더불어 호흡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자세로 일관한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용포리 노변공원에 있는 반공 투사 이강영의 추모비. [건립경위] 앙성면 영죽리에 거주하였던 당시 24세의 이강영(李姜榮)이 1954년 10월 19일 음성군 감곡면 오갑산 고개에서 공비 두 명을 만나 적수공권으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자, 그의 애국심과 반공 정신을 기리고자 충청북도 경찰국장 장영복이 비제를 쓰고 충주경찰서장 차일혁이 찬한 추모비를 세웠다. [형태] 비좌개석의 형태로 화강암으로 제작하였다. 받침돌은 80×55×12㎝의 크기이며, 비신은 42×116×16.5㎝, 지붕돌은 70×30×42㎝의 크기이다. [금석문] 비제는 7×8㎝ 크기의 해서체로 ‘멸공투사이강영영모비(滅共鬪士李姜榮永慕碑)’라 음각하였고, 왼쪽 하단에 3×3㎝ 크기로 ‘충청북도경찰국장장영복서(忠淸北道警察局長張永福書)’라 썼다. 뒷면에는 “이강영군은 본면 영죽리에 세거하든 24세의 애국청년으로서 오직 일편단심 애국애족과 향토 수호에 헌신 노력하던 중 단기 4287년 10월 19일 음성군 감곡면 오갑산 고개에서 공비 2명을 만나서 적수공권으로 용전 감투하다가 애석하게도 호국의 신으로 산화하여 원한을 품은 채 적막한 향리에 고요히 잠들고 있으나 그 불타는 애국심과 멸공 정신을 높이 찬양하고 추모하는 마음에서 동지의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새기어 그 이름을 길이 빛내고저 삼가 기록하여 영모의 뜻을 표한다. 단기 4288년 5월 29일 충주경찰서장 총경 차일혁 씀”이라 음기하였다. [현황] 앙성면사무소 앞 도로 건너편 노변공원에 5기의 비석이 있다. 김채수 공로비, 김희현 청백비, 이강영 영모비, 이병택 기념비, 홍종한 기적비 등으로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용포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의 면장 김희현의 청백비.[개설]대한제국 시기에 면장을 역임한 김희현은 본관이 광산이며, 지방의 중소 지주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복성면장직을 맡은 김희현은 청렴하게 면장직을 수행함은 물론 곤경에 처한 면민이 있으면 자선을 베풀어 말년에는 재산을 거의 탕진하였다고 전한다. 때문에 김희현의 자손은 나무 장사를 하면서 생활을 해야 될 형편이라 학교 진학은 포기해야 했다고 한다.[건립경위]앙암면과 복성면이 앙성면으로 통합되기 이전 복성면장을 지낸 김희현의 숭고한 봉사 정신과 청렴을 기리기 위하여 복성면민들이 1909년(순종 3) 건립하였다.[위치] 충주시 앙성면 용포리 앙성면사무소 앞 도로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제천-안산간 국도 34호선이 앙성면소재지를 관통하는데, 앙성면 농협 하나로마트 앞에 노변공원을 마련하고 이곳에 비를 세웠다.[형태] 화강암으로 조성된 비좌직수형으로 대석은 55×90×14㎝이며, 비신은 49.5×122.5×17.5㎝의 크기이다.[금석문] 앞면의 비제는 5×7㎝ 크기의 단정한 해서체로, ‘복성면면장김희현청백비(福城面面長金熺鉉淸白碑)’라 음각되었고, 뒷면에는 ‘융희삼년칠월일(隆熙三年七月日)’이라 음각되었다.[현황]현재 김희현 청백비가 위치한 곳은 본래 있던 위치는 아닌 듯하나 원래 위치는 알 수 없다. 청결하게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앙성면 온천석(仰城面 龍浦里 溫泉石)
앙성면은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앙암면(仰岩面)과 복성면(福城面)에서 ‘앙(仰)’자와 ‘성(城)’자를 따 앙성면(仰城面)이 되었다 본래 중원군 지역으로, 앙암면이라 하여 말암(末岩)·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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