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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3/08/30 (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춘천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문인석과 동자석등의 석물입니다. 장명등과 동자석 망주석등 여러가지의 석물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8세기부터 왕릉을 지키는 수호신의 상징물로서 무덤 앞 양쪽에 한 쌍씩 세워졌다. 문인석은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나 금관을 쓰고 손에는 홀(忽)을 들고 있는 모습이며, 무인석은 갑옷을 입고 칼은 들고 있다. 처음에는 왕릉에 세워졌으나, 차츰 관리들의 무덤에도 문인석이 세워졌다. 무덤에 장명등을 배치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보여지는 독특한 풍속으로, 개성에 있는 고려 말 공민왕의 무덤 현릉(玄陵)의 장명등을 시작으로 이후 왕릉에는 반드시 세워졌다. 조선시대에는 일품 이상의 재상의 무덤에만 제한하여 세울 수..
경계석을 논둑에 있는 치석재를 활용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혼자만의 생각이다. 비내리는 오후 이익저 영세불망비와 눈마주치고 왔다. 내용은 먼젓번 다녀온 글로 마침을 한다. https://king6113.tistory.com/5746 가덕면 한계리 목사이익저영세불망비(加德面 閑溪里 牧使李益著永世不忘碑) 이익저에 대하여는 여러번 다녀와 소개한 글로 대신합니다.이익저에 관하여 자세한 내용은 다른글로 참조하시고 이익저가 벼슬길에서 물러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이익저에 관하여 자료 king6113.tistory.com 의성의 발자취 | 이익저(李益著) - 의성현 선생안(102) - Daum 카페 이익저(李益著) - 의성현 선생안(102) ○ 이익저 (李益著) 1649년(인조 27) ~ 1722년(경종 2),..
8월말인데도 계절의 변화는 심하다. 태풍의 발달로 지속적인 우기가 계속 진행되나 보다. 창문밖으로 비가 내리는데 집에 있기는 뭐한것 같고 가까운 곳에 한계리석불을 보러 길을 나섰다. 언제나 봐도 마음이 쓰이는 석불이다. 자신의 모든 것 민초들의 아픔의 댓가로 내어주고 오늘도 인적드문 길가에 앉아 계신다. 한계리 노계 마을의 절터에 있는 석불로서 현재는 마을 앞 정자 나무 옆에 놓여 있는데 오랫동안 노천에 방치되어 마멸이 심하고 형체를 확인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불상은 판석형 화강암의 주형광배(舟形光背)와 대좌(臺座)를 함께 조각하였는데 부조(浮彫)가 높지 않아 평면불처럼 보인다. 광배의 윗부분과 불두부는 마멸이 심하여 원상을 알 수가 없는데 불상은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좌상으로 안면은 인위적인 손상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