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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3/08 (2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춘천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문인석과 동자석등의 석물입니다. 장명등과 동자석 망주석등 여러가지의 석물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8세기부터 왕릉을 지키는 수호신의 상징물로서 무덤 앞 양쪽에 한 쌍씩 세워졌다. 문인석은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나 금관을 쓰고 손에는 홀(忽)을 들고 있는 모습이며, 무인석은 갑옷을 입고 칼은 들고 있다. 처음에는 왕릉에 세워졌으나, 차츰 관리들의 무덤에도 문인석이 세워졌다. 무덤에 장명등을 배치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보여지는 독특한 풍속으로, 개성에 있는 고려 말 공민왕의 무덤 현릉(玄陵)의 장명등을 시작으로 이후 왕릉에는 반드시 세워졌다. 조선시대에는 일품 이상의 재상의 무덤에만 제한하여 세울 수..
경계석을 논둑에 있는 치석재를 활용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혼자만의 생각이다. 비내리는 오후 이익저 영세불망비와 눈마주치고 왔다. 내용은 먼젓번 다녀온 글로 마침을 한다. https://king6113.tistory.com/5746 가덕면 한계리 목사이익저영세불망비(加德面 閑溪里 牧使李益著永世不忘碑) 이익저에 대하여는 여러번 다녀와 소개한 글로 대신합니다.이익저에 관하여 자세한 내용은 다른글로 참조하시고 이익저가 벼슬길에서 물러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이익저에 관하여 자료 king6113.tistory.com 의성의 발자취 | 이익저(李益著) - 의성현 선생안(102) - Daum 카페 이익저(李益著) - 의성현 선생안(102) ○ 이익저 (李益著) 1649년(인조 27) ~ 1722년(경종 2),..
8월말인데도 계절의 변화는 심하다. 태풍의 발달로 지속적인 우기가 계속 진행되나 보다. 창문밖으로 비가 내리는데 집에 있기는 뭐한것 같고 가까운 곳에 한계리석불을 보러 길을 나섰다. 언제나 봐도 마음이 쓰이는 석불이다. 자신의 모든 것 민초들의 아픔의 댓가로 내어주고 오늘도 인적드문 길가에 앉아 계신다. 한계리 노계 마을의 절터에 있는 석불로서 현재는 마을 앞 정자 나무 옆에 놓여 있는데 오랫동안 노천에 방치되어 마멸이 심하고 형체를 확인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불상은 판석형 화강암의 주형광배(舟形光背)와 대좌(臺座)를 함께 조각하였는데 부조(浮彫)가 높지 않아 평면불처럼 보인다. 광배의 윗부분과 불두부는 마멸이 심하여 원상을 알 수가 없는데 불상은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좌상으로 안면은 인위적인 손상을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시대의 범종이다 무심천변 절터에서 1970년 민가의 담장을 쌓던 중에 동종, 금고, 향로, 금동보살입상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운천동출토 동종은 통일신라 시대의 일반적인 크기와 형태를 갖춘 범종으로서 문양조식이 없는 구연대(口緣帶)를 두르고 유곽(乳廓) 사이에는 당좌(撞座)가 표현되었다. 당좌는 내외의 2구로 구분하여 내구에는 12판의 연화문을 두르고 자방에는 5개의 연자를 배치하였으며 외구는 당초문을 장식하였다. 당좌 바로 위에는 주조할 때의 접합선이 남아 있어 종신을 상하로 구분하였고 선대 바로 위에는 당좌와 교차하면서 유곽 사이에 비천상(飛天像)이 양각되었는데 주악상(奏樂像)과 합장상(合掌像)으로 천의(天衣)자락이 머리 위로 유려하게 날리고 있다...
청풍부원군 상여는 조선 후기 대동법을 시행하였던 김육(金堉)의 아들 청풍부원군 우명(右明 : 1619~1675)이 죽었을 때 시신을 향리로 운구하기 위해 나라에서 하사한 것이다. 이 상여는 묘소 북방 골짜기에 초가를 지어 보관하며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했었다. 상여(喪輿)는 긴 멜대를 중심으로 한 기본 틀 위에 관을 싣는 몸체를 조성하고 맨 위에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밝은 천을 넓게 펼친 모습이다. 몸체에는 봉황머리와 용이 정교하게 조각되고, 검은 천 위에 색띠와 술을 늘어뜨렸는데 망자의 명복을 빌고 슬픔을 덜려는 의미로 보여진다. 요여(腰輿)는 혼백과 죽은 이의 이름을 적은 위패를 모셔 나르는 작은 가마이다. 긴 멜대 위에 사각형의 방처럼 생긴 몸체를 얹고 맨 위에 네 개의 지붕선이 표시된 반구형의 지..
관음보살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화신으로서 이 세상에 나타나며, 이 때문에 쓰고 있는 보관(寶冠)에는 아미타불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는 석가모니불의 입적 이후부터 미래불인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난파, 화재, 암살, 도둑, 사나운 짐승들에 의한 피해 등으로부터 세상을 지켜주며, 구제할 중생의 근기(根機:정신적 수준)에 맞추어 33가지의 몸으로 세상에 나타난다. 관세음보살은 무수하게 많은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7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 성관음(聖觀音):가장 단순한 형태로서 한 손에 연꽃을 든 채, 서 있거나 앉아 있다. ②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머리가 열 하나, 팔이 둘, 또는 넷인 모습을 하고 있다. ③ 천수관음(千手觀音):1,000개의 팔을 가진 모습을 하고 있다. ④ 준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