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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5/12 (2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조천리(釣川里)는 충주시 앙성면에 속하는 법정리이다.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조대리(釣臺里)와 벌천리(伐川里)에서 ‘조(釣)’자와 ‘천(川)’자를 따 ‘조천(釣川)’이 되었다.본래 충주군 복성면(福城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조대리와 비내리·비내·사기점·청산이골 등이 통합되어 조천리로 개편되었다.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1995년 1월 1일 중원군이 충주시와 통합되면서 충주시 앙성면 조천리가 되었다. 조천리의 뒤로는 조대고개 줄기가 있고, 조대고개가 남쪽의 능암리와 연결되고 있다. 서쪽에는 새바지산[269m]이 솟아 있다. 남한강이 북쪽과 동쪽을 가로막아 예로부터 나루가 발달하였는데, 보개울나루터·복이울나루터·인다락나루터가 있어..
앙성면 조천리 비내마을 입구에 있는 안순구의 공적비입니다.비석의 전면에는 한글로 교감안순구선생공적비라고 적혀 있으며 후면에는 안순구의 공적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후면에 기술된 안순구의 공적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감안순구 선생은 1938년 9월1일생으로 위 사람은 건국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석사로서 교직에 몸담아 33년간 중등교사로 봉직하고 고향에 내려와 생활하면서 (1) 마을길이 좁아 차량통행이 어려워 불편함을 알고 탑거리 다리로부터 마을 안까지 진입로를 넓혔으며 (2) 2010년부터 2021년까지 다년간 마을회장을 역임하면서 솔선수범 헌신봉사로 마을일을 자기 일처럼 했으며 (3) 2020년 10월 15일에는 마을 운동기구 설치할 곳이 없어 고심하던 중 마을회관 옆에 자리한 조천리 310번지..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처음 세워진 후, 고려 광종 이후 역대 왕들의 보호를 받아 큰 절로 성장하였다. 고달사에는 석조 문화유산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전한다.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절을 이루는 데에 혼을 바쳤다고 하는데, 절을 다 이루고 나서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훗날 도를 이루어 큰스님이 되니, 고달사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절터 안에는 깔끔한 모양과 세련된 조각수법의 고달사지부도(국보)를 비롯하여 훌륭한 문화유산들이 많이 남아 있다.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와 이수(보물)는 원종대사의 행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탑비로 975년에 만들었는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로 넘어가는 탑비형식을 잘 보여주고 ..
고달사지 지표 수습과정에서 발견된 석조유물로 용머리를 형상화한 유물입니다.고려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며 어느 석조물의 용머리였는지를 알수가 없습니다.선이 굵고 간결한 조각품입니다.여주박물관 입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텅 빈 폐사지 위로 겨울바람만 외롭다.외로운 바람사이로 울려퍼지는 염불소리.누구를 향한 염불이련가?작은 돌계단 디디고 올라 물음에 답 찾으려이리저리 헤매여 봐도답은 비여있는 내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고빼곡한 송림사이로 숨바꼭질 하 듯겨을바람 따라 저만치 흩어진다. 20251230여주고달사지.
속리산 복천암 밑에 자리하고 있는 속리산복천선원복원기념비( 俗離山福泉禪院復元記念碑) 입니다. 속리산 복천선원사적비(俗離山福泉禪院事積碑)입니다.복천암은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로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성덕왕 19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수차례 걸쳐 중건되다 소실된 것을 영조 11년에 재창했다. 복천암 극락전은 1976년 해체·복원하였으며 내부에는 아미타불상과 후불탱화, 신미대사의 탱화가 보존되어 있다. 현판 무량수(無量壽)는 공민왕 친필로 전한다. 초창기의 기단위에 조선시대 양식으로 복원하였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이 맞배지붕으로 전형적인 조선시대 불전을 구성하고 있다. 조선 후기 다포계 맞배집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측면에 공포를 갖춘 건물이다.이것은 조선시대 중・후기에 이 지역을 중심으로 희귀하게 건립된 것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