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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전국방방곡곡/서산(瑞山) (1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절에서는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이곳은 옛 절터로, 지금은 주변이 모두 경작지로 변하였는데, 땅을 갈 때 가끔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지주는 절터 동쪽에 있으며, 70㎝정도 간격을 두고 마주 서 있다. 안쪽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나, 바깥면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넓은 띠를 새겼다. 기둥의 윗부분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모를 둥글게 깎아 놓은 형태이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폭이 약간 넓어져 안정감이 느껴진다. 지주의 마주보는 안쪽에는 꼭대기에 네모난 홈을 중앙에 팠고, 아래부분에도 네모난 구멍을 뚫어 당간을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당간을 받치..
모처럼 아내와 쉬는 시간이 맞아 같이 서산 용현리에 마애삼존불울 보고 왔습니다. 인터넷 카페에 소개된 사리단의 모습도 궁금했구요. 하나하나 나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공부가 참 좋습니다. 옛님의 숨결. 그 정취를 찾아 | 미소, 사라진 석불, 그리고 '사리안단' -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 Daum 카페 Daum 카페 cafe.daum.net 거사최현생사리안단 법사수한(巨師崔賢生舍利安壇 法師守漢)이란 암각자가 있습니다. 잘 보이질 않아 물을 뿌려 보았습니다. 암각자가 잘 보이지 않을 때는 물을 뿌려주면 잘보입니다. 저는 암각자 사진을 찍으러 갈 때는 항상 피티병을 하나 준비해 가는 버릇이 있습니다. 피티병과 더불어 거친 솔을 준비하시면 좋습니다. 암벽등에 자생하는 이끼등 이물질을 제거할 때 용이합니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층암절벽에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마애불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여 형성되었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옷은 두꺼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앞면에 U자형 주름이 반복되어 있다. 둥근 머리광배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는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얼굴에 본존과 같이 살..
서산 보원사터에 위치한 석조이다. 보원사는 고란사라고도 하며 사찰에 대한 역사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1959년 국보 제84호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발견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던 곳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1963년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석조는 승려들이 물을 담아 쓰던 돌그릇으로, 원형·팔각형·장방형 등이 있다. 이 석조는 화강석의 통돌을 파서 만든 직사각형 모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 형식을 보인다. 규모가 거대하며 표면에 아무 장식이 없어 장중해 보인다. 내부 각 면에도 조각한 흔적이 없으며, 밑바닥면은 평평하고 한쪽에 약 8㎝정도의 원형 배수구가 있을 뿐이다. 안쪽과 윗쪽만 정교하게 다듬고 바깥쪽에는 거친 다듬자국이 그냥 남아 있어 땅에 묻어두고 사용했는지도 알수 없다. 조각..
1매의 화강암 석재를 이용해서 조각하였는데, 높이 216㎝, 어깨 폭 65㎝, 두께 25㎝의 크기. 이마 쪽이 넓고 턱 쪽이 좁은 역사다리꼴의 얼굴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다. 상호의 이목구비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는데, 눈의 경우 거의 감은 것처럼 조각해 놓아 전체적으로 온화한 미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목에는 삼도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형태는 남아 있지 않다. 법의 양식은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 있는 우견편단의 형상이며, 오른팔은 위로 올려 가슴에 붙이고 왼팔은 구부려 배 부위에 오도록 조각하였다. 의습(衣褶)도 표현되어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잘 나타나지 않으며, 상반신의 일부는 깨어져 덧붙여 세웠다. 발은 본체에서 떨어져 돌들 사이에 있는 상태로 복원이 필요하..
tjtksaus qhdnjstkwl 보원사(普願寺)터 서쪽의 금당터 앞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보원사는 백제 때의 절로 사찰에 대한 역사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59년 국보 제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상이 발견되면서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절터에는 이 탑 외에도 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과 탑비 당간지주 석조 등이 남아있어 당시 사찰의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기단 옆면에는 사자상을 새기고 윗기단 옆면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2구씩 새겼다. 8부중상은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에 걸쳐 석탑의 기단에 많이 나타난다. 탑신에서는 1층 몸돌 각 면에 문짝 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