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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도촌리 (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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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괴산군 남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수산리(水山里), 이곡리(梨谷里), 화영리(禾?里)의 각 일부(一部)와 북상면(北上面)의 묘마동(叩馬洞) 일부(一部)를 병합(倂合)하여 화영과 수산(水山)의 이름을 따사 화산리(禾山里)라 하여 사리면에 편입(編入)되었다. (가) 대촌 큰말(大村) :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 도람말 : 지금 회관 남쪽에 있는 마을. (나) 도촌 도촌 안동네 : 전엔 마을 전체를 통털어 도촌이라 했다. 1978년 동네 뒷동산 경사진 쪽에 사는 12가구가 마을입구 홍감사 사당터로 이주한 이후 안에 있다하여 그렇게 부름. 도촌 바깥동네 : 마을입구 홍감사 사당터로 12가구가 이주하여 사는 동네. 오룡가리(五龍洞) : 매봉째부터 다섯줄기가 내려왔다고 하여 붙여진..
문광면 화산리 도촌마을에 있는 조선조의 무인인 홍의(洪義)의 묘비이다. 도촌마을은 옛날에 도자기를 굽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도촌마을 경로당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만날수 있다. 지금은 돌보는 이 없이 방치되여 있으며 시급한 관리가 요구된다. 도촌마을에서 만나 이곳을 설명해 주신 중원대학교 이상주교수님께 이 글을 통해 감사를 드립니다. 홍의(洪義) ?(?)~1484이전(헌종 20) 사람이다. 다음은『세종실록』28권 7년 을사 5월 갑오(甲午 25일)에 보이는 홍의(洪義)에 대한 기록이다.“형조(刑曹)에서 계(啓)하기를, ‘겸사복 호군(兼司僕 護軍) 홍의(洪義)와 홍균(洪淪)이,그 개인 소유의 말을 전곶(箭串)의 어마장(御馬場)에 함께 방목했는데, 백정(白丁) 조인부(趙仁..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도촌리에 있는 금가면장이었던 홍양희의 공덕을 기리는 비. [건립경위] 1945년부터 1960년까지 금가면 1, 2, 3대 면장을 역임한 홍양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금가면민 일동이 세웠다. [위치] 본래 금가면 도촌리 종산 밑에 세웠던 것으로, 금가면사무소가 이전, 건립되자 면민들의 동의하에 면사무소 건물 앞쪽으로 이전하였다. 이곳에는 홍승원 영세불망비도 같이 세워져 있다. [형태] 비좌개석의 형태로 대석 70×42×5㎝, 비신 45.5×142×20㎝, 지붕돌 77×52.5㎝×25㎝의 크기이다. 글자 크기는 비제는 6×7㎝, 본문은 4.5×4.5㎝의 해서체로 음각하였다. [금석문] 비제는 ‘면장풍산홍공양희청선비(面長豊山洪公陽熹淸善碑)’이며 양옆으로 2행씩 4행의 본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