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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면 화산리 홍의의 묘(沙梨面 禾山里 洪義의 墓)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사리면 화산리 홍의의 묘(沙梨面 禾山里 洪義의 墓)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2. 28. 06:54

 

문광면 화산리 도촌마을에 있는 조선조의 무인인 홍의(洪義)의 묘비이다. 도촌마을은 옛날에 도자기를 굽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도촌마을 경로당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만날수 있다. 지금은 돌보는 이 없이 방치되여 있으며 시급한 관리가 요구된다. 도촌마을에서 만나 이곳을 설명해 주신 중원대학교 이상주교수님께 이 글을 통해 감사를 드립니다.

 

 

 

 

 

홍의(洪義) ?(?)~1484이전(헌종 20) 사람이다.

 다음은『세종실록』28권 7년 을사 5월 갑오(甲午 25일)에 보이는 홍의(洪義)에 대한 기록이다.“형조(刑曹)에서 계(啓)하기를, ‘겸사복 호군(兼司僕 護軍) 홍의(洪義)와 홍균(洪淪)이,그 개인 소유의 말을 전곶(箭串)의 어마장(御馬場)에 함께 방목했는데, 백정(白丁) 조인부(趙仁富)와 근장(近杖) 박성우 등(朴成雨等)이 훔쳐다 죽였사온데, 훔친 것이 비록 사유의 말이지만 내승목장(內乘牧場)의 말을 훔쳤으니, 그 본의는, 실로 나라의 말을 훔치려고 한 것이니, 마땅히 도내부승여율(盜內府乘輿律)을 살펴서 모두 참형이 처해야겠나이다.’라고 하니,각각 한 등급 씩 감하라 명하셨다”. 이 기록을 보듯이 홍의는 조선 세종 시대에대 최정예기마병중심 친위대의 정4품의 무관직인 호군(護軍)를 지냈다. 이는 대호군(大護軍)의 다음 직위이다. 부인은 신천 강씨(信川 康氏)로 조선 태조의 계비가 강씨이다. 이렇듯 그는 조선왕가의 일정한 신임을 얻은 유력한 인물로 보여진다.

 

 

 

 

이 비는 성화(成化) 갑진년(1484년) 건립했다. 1914년 화관(禾館)과 수산(水山)을 통합하여 지금 ‘사리면 화산리(禾山里)’로 하였는데,홍의의 묘비에 ‘괴산 남면 화관리(槐山 南面 禾館里)’라 새겨져 있어, ‘화관리(禾館里)’라는 지명이 15세기 이전부터 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상일(李象㊀ 1847~1899)의 단자에도 ‘남상면 화관거 이상일 단자(南上面 禾舘居 李象㊀ 單子)기해 오월 일(己亥[1899년]五月 日)’로 썼다. 사리면 화산리 242-1(도촌) 안동네 자무탕 정상에 있다. 묘표의 홍의(洪義)라는 이름을 쓴 글씨는 구양순(歐陽詢 557~641)풍의 글씨며, ‘무(武)’와 ‘의(義)’의‘창 과(戈)’의 운필에서 무인(武人)의 필의를 느낄 수 있다. 홍의(洪義)묘비 전면과 후면. 후면은 풍화가 심해 한 겹 벗겨져나갔다. 이로보아 비석을 세운 지 오래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괴산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