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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면 신기리 안동김문효자각(文光面 新基里 安東金門孝子閣)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문광면 신기리 안동김문효자각(文光面 新基里 安東金門孝子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2. 27. 11:09


문광면 신기리에 있는 안동김문 충효각이다

신기리 마을입구에 과수원과 접하여 도로가에 위치하고 있다.

야트막한 철재 울타리를 두르고 깨끗히 정리정돈 되여 있다 관리상태가 양호하다.




김만협(金萬協) 1640(인종 27)~1693(숙종 19)김만협의 자는 세진(世珍), 본관은 안동으로 안렴사(按廉使) 오은(梧隱)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며 김천해(金天海)의 아들이다.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냈다. 부모에게 효행을 다하여 칭송이 자자하였다.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병석에 눕게 되자 백방으로 온갖 약을 구하여 써 보았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임종에 가까워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 입에 피를 흘려 넣어 5일을 더 살게 하였다. 마침내 상을 당하여서는 묘소를 20리 떨어진 괴산읍 질골에 정하고 예법에 따라 3년간 복상(服喪)을 하였다. 복상하는 동안은 추위나 더위, 비바람을 개의치 않고 하루도 빠짐없이 성묘를 하였다. 먹는 것 또한 3년간 죽으로 끼니를 해결하였다. 하루는 묘소 근처에 산불이 발생하여 아버지의 묘소까지 번져왔는데 옷을 벗어 물에 적시어 온 힘을 다하여 불을 껐다. 이때 화상을 입고 화기를 마셔 병을 얻게 되어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692년(숙종 18) 문중에서 상의하여 정려문을 세웠고, 정려문은 현재 문광면 신기리에 있다.



김일(金溢) 1719(숙종 45)~자는 익삼(益三), 본관은 안동으로 김만협의 5세손이다. 대대로 효를 실천하는 가문에서 태어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 곁을 지키며 아침저녁으로 잠자리를 살피고 문안을 드렸다. 또한 부모가 병환이 있으면 지성으로 약을 달여 올렸다. 나이 13세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신음하자,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이 없이 험한 산길을 왕래하며 산 속에 들어가 산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지극한 효성에 하늘도 감동하였는지 어머니의 병환이 나았다고 한다. 집안 형편이 매우 가난하여 어머니 봉양이 어렵게 되자 마을의 제삿집을 찾아 다니며 음식을 얻어다가 공양하였으며 허리에는 항상 음식을 얻어 담을 주머니를 차고 다녔다. 과거시험을 보기위해 서울에서 수일간을 머물게 되었는데 하루는 어머니가 병환이 들어 자기를 부르고 있는 꿈을 꾸고 심상치 않아 과거를 포기하고 황급히 돌아왔다. 과연 집에 돌아와보니 늙은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있었다. 이에 지성으로 간호하여 낫게 하고 천수를 다 누리도록 하였다. 어머니 상을 당하여서는 10리 밖에 장사를 지내고 궤연(几筵, 죽은 사람의 신주를 모신 곳)에서 잠을 자며 추위나 더위, 비바람을 무릅쓰고 3년 동안을 한결같이 시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