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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물면 대상동 안지효자문(甘勿面 大相洞 安志孝子門) 본문
감물면 이담리 대상동 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효자 안지의 효자문이다. 대상리는 큰 재상이 나올자리라는 도선설에 의한 것 같다고 구전된다.
안지의 자는 사상(士尙), 호는 농애(農厓), 본관은 순흥(順興)으로 이조판서를 지낸 지촌(智村) 안우하(安友夏)의 증손이며, 중추부사(中樞府使)를 지낸 안충세(安忠世)의 아들이다. 1574년(선조 7) 대시(大試) 삼장(三場)에 연달아 합격하고 1583년(선조 16)에 진사에 올랐다.
안지는부모에 대한 효성이 두텁고 재덕과 문행을 아울러 옛 어진 군자에 못지 않았다. 어머니가 중풍으로 1년을 넘게 병석에 누워있었는데 밤낮으로 정성껏 시탕하였다. 의원이 두꺼비 고기와 황구(黃狗)가 매우 좋다고 하자 사방으로 널리 구하였으나 한겨울이었던 관계로 구할 수가없어 울면서 돌아오는데 갑자기 강언덕이 무너지며 두꺼비 두 마리가 나와 이것을 잡아서 황구와 함께 어머니에게 올렸더니 병세가 회복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에 병이 다시 재발하여 밤마다 치료할 약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늘에 기도하였고, 부인 박씨 또한 시어머니 대변의 맛을보아 병세를 살폈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 효자부부라고 칭송하였다. 이듬해 봄에 병세가 더욱 위독하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어머니에게 피를 먹여 9일을 더 사시게 하였다. 마침낸 돌아가시자 매우 슬퍼하며 수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미음으로 연명하였다. 때마침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늙은 아버지를 업고 산 속에 피난하면서도 가묘(家廟)를 받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제사를 지냈다. 후에 한강(寒崗) 정구(鄭逑)가 충주목사로 부임하여 그의 효행과 문행을 듣고 나라에 알려 1629년(인조 5)에 정려되고 충의위(忠義衛) 여절교위(勵節校尉)에 증직되었다. 1849년(헌종 15)에 상산숭현사(常山崇賢祠)에 배향되었다. 정려문은 진천군 덕산면 두촌리에 있었는데 1970년 묘소가 있는 감물면 이담리 대상동에 이전되었다. 저서에 『계림총화(桂林叢話)』·『옥설총보(玉屑叢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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