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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면 신기리 군수손만웅선정비.(文光面 新基里 郡守孫萬雄善政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문광면 신기리 군수손만웅선정비.(文光面 新基里 郡守孫萬雄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2. 23. 06:42

 

괴산군수 손만웅의 선정비를 찾아서 문광면의 신기리를 찾았다.정월 대보름이니 동네마다 동네화합 윷놀이가 한창이다. 동네주민들이 모두 마을회관 광장에 모여 윷놀이판이 벌어졌다.

 

 

 

 

 

왁자지껄한 마을회관 광장을 찾이 비석의 위치를 탐문하니 이 사람 저사람 모두 모여 호기심을 나타내신다 "혹시 그 비석인가?" 하며 비석의 위치를 알려주는데 전임이장 이시라는 분이 넘어져있는 비석을 친구분과 함께 세워놓았다며 뭐라고 써있는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비석은 전법 마을입구에서 신기리 쪽으로 10여미터 올라오면 왼쪽 산자락이 끝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비석앞에는 잡목이 자라고 있어 시야를 방해한다. 차에 가지고 다니던 낫으로 앞이 훤히 보이도록 나무를 쳐주었다.

 

 

비석은 자연석에 비석을 새겨 넣은것이다. 이것도 마애비라고 보아야 하나. 큰길가 산자락 끝에서 흘러온 긴세월이 어깨가 무거운지 비석은 앞으로 숙어 있다.그래도 흐른세월에 비해 글씨는 선명하니 잘 알아 볼수가 있다. 비석에는 행군수손후만웅청덕애민선정비(行郡守孫侯萬雄淸德愛民善政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글씨는 잘알아볼수있다.

 

 

 

 

손만웅은 1643(인조 21)∼1712(숙종 38).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적만(敵萬), 호는 야촌(野村). 흥효(興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당(榶)이고, 아버지는 신의(愼儀)이며, 어머니는 이심근(李深根)의 딸이다. 1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괴산군수 손만웅비석 동헌에 세우는날. (tistory.com)

 

괴산군수 손만웅비석 동헌에 세우는날.

거 참 사람의 인연이란 참 오묘하다. 문광면 신기리에 있던 조선시대 괴산군수를 지낸 경주인 손만웅의 선정비를 찾아 인터넷상으로는 처음으로 사진을 올렸었다. 괴산군지에 나오는 두어줄의

king6113.tistory.com

 

 

 

그 해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크게 명성을 떨치고 성균관에 등용되어 오수찰방(獒樹察訪)·전적을 거쳐 공조·예조·형조의 좌랑을 지냈다. 1674년 현종이 죽었을 때 도감랑(都監郎)으로서 모든 일을 순서있게 처리하자 당상관들이 그 재주를 칭찬하고 일마다 그와 의논하여 행하였다.
1675년(숙종 1) 병조좌랑에서 영광군수로 내려가 선정을 베풀었다. 정언·호조정랑·춘추관기사관을 거쳐 지평으로 있을 때 김수흥(金壽興)을 서용하려고 하자 자의대비복제문제(慈懿大妃服制問題)에서 그가 효종을 ‘체이부정(體而不正 : 장자나 장손 이외의 왕자가 왕위를 계승한 경우 그 위치는 장자나 장손의 지위(=體)이나 자연인으로는 장자가 아닌(=不正) 것을 일컬음.)’이라고 하여 파직당하였던 죄목을 내세워 조리정연하게 논핵(論劾)하여 취소시켰다.
1677년 사예로 동지사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뒤 사도시 정(司䆃寺正)·사헌부장령·공주목사·나주목사·괴산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나, 가정이 빈한하여 서책과 장복(章服)을 팔아서 부모를 봉양하였으며, 청주목사에 제수되었다가 파직되었는데 대신들이 상주하여 유임되었다. 그 뒤 동래부사를 거쳐 경주부윤에 이르렀다.

 

 

 

1692년(숙종 18)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다.

『동래부지()』에 따르면 손만웅은 1692년 10월 동래에 부임하였다. 부임 한 달 전에 늙은 부모의 봉양을 이유로 임명을 취소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0월에 동래에 부임하여 11월 연향()[잔치를 베풀어 손님을 접대함] 때문에 왜관을 다녀왔다고 한다. 1693년(숙종 19) 3월 동래 부사직에서 물러났다. 경주 부윤을 마지막으로 벼슬살이를 접고 고향에 내려가 은거하였다.

 

 

 

 

1784년(정조 8)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관동리 구호서원()에 배향되었다. 1866년(고종 3) 불천위()[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 재실인 추모재()가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율리에 세워졌다.

 

 

 

 

 

 

승정원일기를 살펴보면 손만웅이 괴산군수에 임명됨을 알수가 있다.
승정원일기 17책 (탈초본 338책) 숙종 15년 12월 20일 임오 8/15 기사 1689년  康熙(淸/聖祖) 28년 - 睦昌明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有政。吏批, 判書李觀徵病, 參判權愈進, 參議沈檀進, 都承旨柳命賢進。兵批, 行判書閔黯陳疏, 參判李鏶進, 參議KC02356病, 參知姜鋧病, 左副承旨李萬元進。吏批, 以睦昌明爲大司諫, 李國芳爲獻納, 孫萬雄爲槐山郡守, 柳星明爲尼山縣監, 兪任重爲文化縣令, 魚瑞龍爲金郊察防, 宋道涵爲兵曹佐郞, 柳世賓爲麻田郡守, 奉敎單李寅燁, 承文著作單洪萬紀, 正字單李宇謙

 

 

 

 

 

 

 

인터넷상으로 사진이 처음 오르는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많은 차들이 오고가는 길가 산모퉁이 에서 에전의 지난세월을 그리는 것일까? 흐르는 세월만큼 선정비도 힘이든지 허리가 굽은 듯 앞으로 숙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