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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동이면 금암리 (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동이면 금암리 압촌마을 입구에 있는 초은거사 오재국의 송덕비입니다. 압촌마을 버스정류소옆애 금암리 마을자랑비와 함께 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초은거사오재국송덕비(楚隱居士吳在國頌德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비석은 단기 4282년(1949년)에 금암리민 일동으로 세웠다. 모든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일보다 부락민들의 일을 먼저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고 면을 위해 열심을 냈던 오재국의 공로를 못잊어 송덕비를 세웠다. 비석의 건립년대로 보아 오재국은 일제강점기시절 동이면에 근무하면서 면민들과 면의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 금암리는 고창오씨들의 집성촌 입니다. 금암고창오씨세거지지(金岩高敞吳氏世居之地)라고 써있습니다. 금암리 유래는 마을 뒤에 용암사란 절이 있고 큰 바위들이 용같이 뻗었다 하여 용암말 이라 불렸고 옆마..
동이면 금암2리에서 호천과 효자문을 둘러보고 눈을 들어 길 건너를 바라보면 전식의 영당이 있는 목담영당과 더불어 양신정을 볼수있다. 목담영당앞까지 차량출입이 가능하나 농로이다 보니 큰 길가에 차를 세우고 도보로 가는것이 편하다. 큰길에서 약 50여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삼문에는 통인문이란 현판을 걸고 있으며 막돌로 담장을 둘렀으며 후손들에 의하여 잘관리되고 있다. 목담영당 옆으로는 전팽령이 밀양부사를 그만두고 1545년 고향에 왔을 때 쉬면서 글을 읽기 위해 지은 '옥천 양신정'(충청북도 기념물 29호)이 있다. 당시 건물은 정유재란(1597년) 때 불에 타버렸으며 현재의 정자는 1828년(순조28년) 다시 지은 것으로 정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 목조의 기와집이다. 금암리는 군동면(郡東面) 용암..
양신정은 1545년(인종1)봄에 옥천인 전팽령이 밀양부사를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있을때 동이면 금강에 위치한 목담호숫가에 세운 정자입니다. 양신이란 뜻은 명성과 이익을 쫒지않고 물러나 조용히 자신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한다는 뜻입니다. 본인이 독서도하고 글도 가르칠 수 있도록 금강가에 있는 목담호수가에 세운 것으로, 1597년 선조30년 병화로 불타없어진 것을 1620년 광해군12년에 다시 지었으나, 1733년 영조9년에 무너져 없어졌다. 현재의 정자는 1828년 순조28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서 정면3칸, 측면2칸, 팔작목조기와집이다. 양신정은 지대가 높고 주변경관이 수려하며, 인접하여 사서공전식선생의 영정을 모신 목담영당이 위치하여 있다. 양신정이 위치한 금암리 유래는 마을 뒤에 용암사란 절이 있고 큰..
동이면 금암리 압촌마을에 있는 초은거사 오재국의 송덕비입니다. 압촌마을 버스정류소옆애 금암리 마을자랑비와 함께 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초은거사오재국송덕비(楚隱居士吳在國頌德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비석은 단기 4282년(1949년)에 금암리민 일동으로 세웠다. 모든일을 하면서 ..
금암리 압구정 마을에서 신촌마을로 가는 경부고속도로 지하차도를 지나 나오는 사거리 도로변에 마을전설비등과 함께 위치하고 있다. 비문에는 영릉참봉오형열송덕비(寕陵參奉吳衡烈頌德碑)라고 음각되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