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부도
- 오블완
- 화양구곡
- 사인암
- 상당산성
- 단지주혈
- 화양동 암각자
- 국립청주박물관
- 충주박물관
- 청주박물관
- 밀양박씨
- 경주김씨
- 곡산연씨
- 선돌
- 효자문
- 티스토리챌린지
- 공산성 선정비
- 문의문화재단지
- 법주사
- 사과과수원
- 문경새재
- 효자각
- 청풍문화재단지
- 충북의 문화재
- 보성오씨
- 공주박물관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부여박물관
- 각연사
- 한독의약박물관
- Today
- Total
목록보원사지 (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보원사(普願寺)터 서쪽의 금당터 앞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보원사는 백제 때의 절로 사찰에 대한 역사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59년 국보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발견되면서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절터에는 이 탑 외에도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과 탑비, 당간지주, 석조 등이 남아있어 당시 사찰의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기단 옆면에는 사자상을 새기고 윗기단 옆면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2구씩 새겼다. 8부중상은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에 걸쳐 석탑의 기단에 많이 나타난다. 탑신에서는 1층 몸돌 각 면에 문짝 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얇고 넓은 편으로 온화한 체감률을 보..
보물 제105호. 높이 4.7m. 고려시대 고승인 법인국사 탄문(坦文, 900∼975)의 유골을 모신 승탑으로, 탄문이 입적한 975년(광종 26)과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보물 제106호)가 건립된 978년(경종 3) 사이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탑비와 함께 부도전(浮屠殿)에 자리하고 있다. 승탑은 바닥돌부터 지붕돌까지의 단면이 8각으로, 신라 승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원당형(圓堂形)을 따르고 있다. 바닥돌은 4장의 널돌로 이루어졌는데, 윗면은 별다른 시설이 없이 아래받침돌을 받치고 있다. 아래받침돌은 윗단과 아랫단으로 구성되었다. 아랫단은 옆면의 각 면마다 1구씩의 안상(眼象)이 조각되었는데, 안상 안에는 각각 모습을 달리한 사자상(獅子像)이 1구씩 돋을새김되어 있다. 윗단의 윗부분..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서산 보원사지에 있는 법인국사 탄문(坦文)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탄문[900~975]은 자는 대오(大悟), 속성은 고씨(高氏), 광주(廣州) 고봉(高熢) 사람이다. 15세 때 장의산사(莊義山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고려 태조의 왕사로 있으면서 신명순성왕태후가 임신하였을 때 축수하여 광종이 태어났다. 968년(광종 19)에 왕사로 책봉되고 975년에 국사로 봉해짐으로써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호불 군주이며 개혁 군주였던 광종의 종교적·사상적 배후 역할을 담당하였다. 탄문은 서산 보원사의 중창에 기여하였으며 화엄종의 입장에서 선종 사상을 융합하려고 힘썼다. 서산 보원사가 화엄 10찰의 하나로 꼽힌 것은 탄문의 영향력과 관계가 깊은데, 이에 관련하여 975년 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