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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비선거리 (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미타사 오르는길 우측으로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숙종시절 충주목사를 지낸 이국헌과 엄찬의 공적비입니다. 이 비석으로 말미암아 지명 또한 비선거리라는 명칭이 생겼습니다. 소이면 비산리 비석거리에 있는 충주목사를 지낸 이국헌과 엄찬의 선정비입니다. 두 비석이 나란히 서있습니다. 비석의 크기나 모양등으로 보아 한사람의 솜씨인 듯 합니다. 이국헌이 충주목사로 있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후임으로 충주 목사로 온 사람이 엄찬입니다. 엄찬은 1693년(숙종 19) 충주목사겸충주진관병마첨절제사가 되었다. 같은 해 전임 충주목사 이국헌(李國憲)이 갑자기 죽음을 당하자, 이국헌의 아들이 소장(訴狀)을 올려서 의심스러운 여섯 사람을 가두었다. 그런데 이국헌의 후임으로 온 충주목사 엄찬까지도 꾸짖고 욕보이자, 엄찬이 이국헌..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자리한 효자 양수척의 비석입니다. 비석은 민가 담장 밑에 자리하고 있습니다.비석의 전면에는 효자양수척지비(孝子楊水尺之碑)라고 쓰여 있으며 비석의 마모정도가 심합니다.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양수척은 조선 세조~성종 년간에 두 아우와 함께 청주에 살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무뢰와 횡포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늙은 어머니에게도 공손치 못하였다고 한다. 이에 노모는 항상 이들 형제들을 걱정하다 병이 들어 눕게 되고, 누운 채로 배변하게 되었는데, 이들 3형제는 노모를 모실 수 없으니 고려장을 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채비를 차렸다. 이 때 충청북도 상당구 남일면 효촌리에 사는 경대유(慶大有)[경연(慶延)]라는 사람이 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이들 3형제를 꾸짖자 양수척 형제는..
참 행복하다.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마음속에 게으름 탓이리라 하는 생각은 머릿속에 가득한데 그 게으름을 이겨내려는 행동으로 옮기지를 못했다. 이렇게 또 이국헌이란 이름의 선정비는 세상에 빛을 본다.나의 조그만 행동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준다는 것 그것은 행복이다. 충주목사 이국헌의 선정비입니다.참 아이러니 하게도 엄찬의 공적비와 같이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습니다이국헌과 엄찬은 어찌 보면 서로가 철천지 원수일테니 말입니다. 이국헌이 육방관속에 의해 의문을 죽음을 당한 후 이국헌의 아들은 여러방법으로 육방관속을 경옥에 가두는 이야기가 승정원일기에 나와 있습니다이국헌이 죽은후 충주목사 후임자가 엄찬이지요 엄찬이 충주목사로 부임을 하자 일설에 의하면 이국헌의 아들이 엄..
조선 후기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무관이다. 승정원 일기 철종14년(1863년)7월에 의하면 정종현은 서원영장(西原營將)에 제수된다. 정종현(鄭宗鉉)은 고종 때 충청병영(忠淸兵營)의 영장(營將)을 지냈다. 선정비 내용에 의하면 그는 성품이 온화하고 청렴하였으며 공평하게 일처리를 하여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산수리에 있는 경주정씨 사적비군. 경주정씨로 진천군 덕산면 산수리 중방마을에 세거하기 시작한 정환 이후 정이경과 정우문의 사적과 효행사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정환은 중방마을[속칭 방동]에 거주하기 시작한 경주정씨 입향조로서 그 가문적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