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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척 효자비 (楊水尺 孝子碑)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양수척 효자비 (楊水尺 孝子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0. 4. 5. 19:35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효자 양수척(楊水尺)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건립경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양수척조선 세조~성종 년간에 두 아우와 함께 청주에 살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무뢰와 횡포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늙은 어머니에게도 공손치 못하였다고 한다. 이에 노모는 항상 이들 형제들을 걱정하다 병이 들어 눕게 되고, 누운 채로 배변하게 되었는데, 이들 3형제는 노모를 모실 수 없으니 고려장을 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채비를 차렸다.

이 때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효촌리에 사는 경대유(경연)(慶大有, 慶延)라는 사람이 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이들 3형제를 꾸짖자 양수척 형제는 크게 감화되어 마치 새로 태어난 듯 노모에 대한 정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이 비석은 그와 같은 내용을 새긴 것이다.

 

                                          [양수척형제를 꾸짖여 감동시킨 효자 경연의 효자비]

[위치]
청주에서 월오동으로 가는 도로변의 오른 쪽 길가에 있다.

[형태]
사각형의 밭침돌 위에 높이 112㎝, 폭 35㎝, 두께 24㎝의 비신을 세웠다.

[금석문]
비석 앞면에 “효자양수척지비(孝子楊水尺之碑: 효자양수척의 비)”라고 새겼고, 뒷면에는 건립시기 등을 새겼으나, 먼지와 이끼로 덮여있어 판독하기가 어렵다.

[현황]
석재가 거친 화강암인 관계로 풍화가 많이 된데다 도로변에 위치해 있어 보전 상태가 좋지 못하다.

...디지털청주문화대전....

 

양수척이란....고려와 조선시대 천인계층의 하나.
목축업·도살·유기업(柳器業) 등에 종사하던 무리인 화척(禾尺)·재인(才人)의 전신으로 조선시대에는 백정(白丁)이라고 불렸다. 양수척의 어원과 호칭의 변화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이들의 기원에 대해서도 이설이 많으나 일반적으로 북방유목민족인 말갈·거란·타타르족의 유이민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 간간이 유입했으며, 조선 초기까지도 국가의 부역을 지지 않고 일반농민과 통혼하지 않고 자신들의 풍습 아래 무리지어 살았다. 따라서 이들의 생활상에 유목민적인 관습이 많아 농사를 짓지 않고 수렵·목축을 영위하며 남녀 모두 기마와 궁술에 능했다고 한다. 때로는 민가를 약탈하는 도적의 무리로 탈바꿈하기도 했고, 군대에서 특별히 모집하여 이들의 전투력을 활용하기도 했다. 조선 초기에 이들의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신백정으로 명칭도 바꾸고 농토를 주었으나 쉽게 동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