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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생극면 방축리 안동권씨 묘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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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권료(權憭)의 묘비. 권료의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언명(彦明)이다. 양촌(陽村) 권근의 증손, 안천군(安川君) 권준(權蹲)의 손자이며 마전군수(麻田郡守) 권념(權念)의 장남이다. 모친은 강화최씨(江華崔氏)로 사재감정(司宰監正) 최저(崔渚)의 딸이다. 음보로 결성현감을 역임하였다. 묘비는 대석을 포함하여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전체 높이 176㎝로, 비신의 높이 116㎝, 너비 61.5㎝, 두께 24㎝이다. 상부에는 12엽의 연화문을 조각하였고, 꼭대기에는 보주(寶珠)의 흔적이 있다. 묘비는 위쪽에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 횡서하고, 아래에 종서로 ‘홍치을축오월졸십월장 통훈대부결성현감권료묘 정덕정묘이월입석(弘治乙丑五月卒十月葬 通訓大夫結城縣監權..
권근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안동. 초명은 권진(權晉),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 증조부는 권부(權溥)이다. 1368년(공민왕 17) 성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급제하여 춘추관검열·성균관직강·예문관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공민왕이 죽자 정몽주(鄭夢周)·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배원친명(排元親明)을 주장하였다. 1390년(공양왕 2) 윤이(尹彝)·이초(李初)의 옥사에 연루되어 한때 청주옥에 구금되기도 하였다. 뒤에 다시 익주(益州)에 유배되었다가 석방되어 충주에 우거(寓居)하던 중 조선왕조의 개국을 맞았다. 조선왕조에 출사하여 예문관대학사(藝文館大學士) 등을 지냈고, 1396년(태조 5) 이른바 표전(表箋) 문제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귀국한 뒤 개국원종공..
권제는 본관은 안동. 자는 중안(仲安), 호는 지재(止齋). 아버지는 권근(權近)이다. 부인은 판사 이휴(李携)의 딸이다. 음보로 경승부주부(敬承府主簿)에 기용되었고 후에 감찰이 되었다. 1414년(태종 14) 문과에 급제하고, 병조정랑·예문관응교를 역임하고, 1416년(태종 16) 성균관사예, 1418년 의정부사인·전사소윤·세자시강원문학을 지냈다. 1419년(세종 원년) 사헌부집의가 되어 사은사(謝恩使)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승정원동부대언·승정원좌대언을 지냈다. 1423년(세종 5) 모친상을 마친 후 집현전부제학에서 예조참판·대사헌·함길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이어 평안도관찰사겸평양부윤, 1430년(세종 12) 경창부윤, 1431년 경기도관찰사, 1433년 예조좌참찬·예조판서, 1435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