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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극면 방축리 권근묘지(笙極面 防築里 權近墓地)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생극면 방축리 권근묘지(笙極面 防築里 權近墓地)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10. 14. 06:25

 

 

권근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안동. 초명은 권진(權晉),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 증조부는 권부(權溥)이다.  1368년(공민왕 17) 성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급제하여 춘추관검열·성균관직강·예문관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공민왕이 죽자 정몽주(鄭夢周)·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배원친명(排元親明)을 주장하였다. 1390년(공양왕 2) 윤이(尹彝)·이초(李初)의 옥사에 연루되어 한때 청주옥에 구금되기도 하였다. 뒤에 다시 익주(益州)에 유배되었다가 석방되어 충주에 우거(寓居)하던 중 조선왕조의 개국을 맞았다. 조선왕조에 출사하여 예문관대학사(藝文館大學士) 등을 지냈고, 1396년(태조 5) 이른바 표전(表箋) 문제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귀국한 뒤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으로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정종 때는 정당문학·대사헌 등을 역임하면서 사병 혁파를 건의하여 단행하게 하였다.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으로 길창군(吉昌君)에 봉군되고 찬성사(贊成事)에 올랐다.  유학제조(儒學提調)를 겸임하여 유생 교육에 힘쓰고, 「권학사목(勸學事目)」을 올려 당시의 문교 시책을 개정 보완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성리학자이면서도 사장(詞章)을 중시하여 경학과 문학을 아울러 연마하였다. 이색(李穡)을 스승으로 삼아 그 문하에서 정몽주·김구용(金九容)·박상충(朴尙衷)·이숭인(李崇仁)·정도전 등 당대 석학들과 교유하면서 성리학 연구에 정진하여, 고려 말의 학풍을 일신하고 조선왕조 유학의 토대를 닦는데 공헌하였다.  『입학도설(入學圖說)』과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을 저술하였으며, 시문집으로 『양촌집(陽村集)』관련항목 보기40권이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권근의 부인 경주이씨의 묘비.  권근(權近)의 부인 경주이씨(慶州李氏)는 증판삼사사(贈判三司事) 이존오의 딸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의정부우찬성 권제(權踶), 차남은 길창군 권규(權跬), 삼남은 한성부소윤 권준(權蹲)이다. 딸은 판종부시사 최주(崔宙)와 결혼을 하였다. 묘비는 1444년(세종 26)에 건립되었다.  8각의 봉분 앞에는 묘비와 상석이 각각 놓여 있다. 앞에서 보아 왼쪽이 권근, 오른쪽이 부인 경주이씨의 묘비이다. 묘비는 대석 위에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비신 위는 연화문과 보주(寶珠)로 장식하였다. 비는 전체 높이 159㎝, 너비 56㎝이다.  묘비의 앞면에, ‘양촌선생권문충공부인숙경택주경주이씨지묘(陽村先生權文忠公夫人淑敬宅主慶州李氏之墓)’라 적혀 있다. 뒷면에는 ‘유명정통구년갑자삼월초십일(有明正統九年甲子三月初十日)’이라 쓰여 있다. 남편의 묘비, 상석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묘비는 2기가 한꺼번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두 묘비의 형태와 크기가 같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의 묘비. 권근(權近)은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1398년(태조 7) 1차 왕자의 난 이후 사병(私兵)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 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지고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올랐다. 사후 좌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묘소는 원래 경기도 광주에 있었으나 1440년(세종 22)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8각 봉분 앞에는 묘비와 상석이 각각 놓여 있다. 앞에서 보아 왼쪽이 권근, 오른쪽이 부인 경주이씨의 묘비이다. 묘비는 대석 위에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비신 위는 연화문과 보주(寶珠)로 장식하였다. 전체 높이는 151㎝, 너비는 55.5㎝이다. 앞면에는 ‘조선국좌명공신의정부찬성사시문충공양촌권선생지묘(朝鮮國佐命功臣議政府贊成事諡文忠公陽村權先生之墓)’라 적혀 있다. 뒷면에는 ‘유명정통구년갑자삼월초십일(有明正統九年甲子三月初十日)’이라 쓰여 있다.  700여㎡의 묘역에 8각형의 봉분과 묘비 2기, 상석 2기, 문인석 4기, 장명등 1기를 갖추었다. 봉분은 높이 2.4m, 너비 6.5m의 크기로 현재 2단의 면석이 보이며, 각 귀퉁이에는 쐐기돌을 끼워 구조를 완성하였다. 묘비는 권근의 부인 것과 함께 각각 2기를 세웠는데 전체적인 형태는 동일하다. 상석은 묘비 앞에 각각 배치하였고, 문인석은 크기가 다른 2쌍을 배치하였다